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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주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105호
발행연도
2022.1
수록면
41 - 6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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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조선시대 군주 가운데 드물게 잦은 지방 순행을 한 임금이었다. 조선 초기의 태조와 조선후기의 현종, 영조, 정조 등도 지방 순행을 다녔지만, 세조처럼 여러 지역을 두루 방문하지는 않았다. 세조는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충청도, 강원도를 찾았으며, 세조 초년과 말년에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순행할 예정이었지만 준비상태의 미흡, 이시애의 난과 건강 악화가 겹치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방문을 포기한 바도 있었다. 세조의 지방 순행은 군사 훈련을 통한 정권 안정, 민정 시찰을 통한 민심 수습, 온천욕을 통한 건강 관리 등 다목적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순행을 통해 요순시대의 정치를 재현하고자 했다. 세조대에는 하늘에 대한 직접 제사인 환구제도 거행되었다. 순행과 환구제는 세조가 중국 황제의 의례를 모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조는 순행, 환구제를 통해 유사 황제체제를 구축했고, 국왕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했던 것이다. 세조대의 순행은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그 양상의 뚜렷한 변화가 보인다. 집권 전반기의 순행이 군사 훈련과 민정 시찰 등 실질적 목적 달성을 위해 진행되었던 것에 반해, 후반기에는 건강 관리와 성지 순례 같은 개인적 동기 때문에 순행이 이루어졌다. 세조는 집권 후반기 순행을 통해 불교계 및 일반 백성과 광범위한 직접적 접촉을 갖고자 했다. 이는 성리학에 바탕하여 사대부 문신 위주의 정치를 표방했던 전후의 조선시대 국왕들과는 매우 구별되는 특이한 통치 행위였다. 세조는 국왕의 대민 접촉이 거의 없던 조선시대 문신세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피지배층과 군사력에 바탕한 통치를 구상했고, 이를 실현할 방편으로 순행을 활용했던 것이다. 세조의 순행 양상은 동왕 12년(1466) 강원도 방문을 계기로 급속히 변화했다. 이전의 순행이 軍事와 民事的 현안을 다루기 위한 것이었던데 반해, 강원도 순행은 온천욕과 성지 순례 같은 세조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안정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세조는 방문했던 금강산에서 담무갈보살을, 오대산에서는 문수보살을 친견했다. 앞서 동왕 8년 세조는 상원사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강원도 순행으로 인해, 세조는 당시 민중에게 인기가 있던 문수, 관음보살과 금강산의 많은 보살을 거느린 담무갈보살을 모두 만난 임금이 된 것이다. 세조의 보살 친견 이야기는 이를 축하하는 篆文, 頌文 등의 기록물과 설화, 전설 등의 비기록적 구전이란 형태의 양면으로 후세에 남겨졌다. 세조는 지방 순행, 보살의 출현과 친견, 이에 대한 신하들의 축하 행위, 보살 친견 사실의 민간 유포와 신화화, 그리고 인접국에 대한 외교적인 통보를 통한 공식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의 신성성을 조작하고 퍼트렸다. 순행을 통한 불교 접촉은 세조의 통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고도의 선전술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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