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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광민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저널정보
국립무형유산원 무형유산 무형유산 제12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183 - 21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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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마을 중심사회에서 국가 중심사회로의 이행과정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단편적 연구에 지나지 않는다. 제주도 전통사회는 마을 중심의 사회였다. 하나의 마을 조직은 마을마다 마을 사람들의 뜻에 따라 선임된 존위(尊位), 경민장(警民長)과 하인(下人), 감관(監官)과 ‘지킴이’로 구성되어 있었다. 1906년 설치된 통감부와 1910년 설치된 조선총독부라는 일제강점기 정부가 들어서며 도두리를 비롯한 제주도 사회는 국가 중심주의 사회로 급속도로 강제 이행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제주도 사람들이 조직하였던 존위, 경민장, 감관을 해직시키고, 경민장 자리에 구장, 감관 자리에 ‘순사(巡査)’를 배치하였다. 도두리 어장에 밀려온 ‘영장’은 ‘순사’가 주도적으로 처리하였다. 이때부터 도두리 어장은 철저하게 국가 소유의 것이 되고 말았다. 석방렴(石防簾), 목막이그물, 후릿그물 등은 조선총독부의 면허를 받아야 어로 활동이 가능하였다. 한반도에 조선총독부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 도두리에는 존위, 경민장, 감관이 있었고, 7개 자연마을마다 한 사람의 동장이 있었다. 이때 도두리 어장은 완전한 마을 공동소유였다. 공동소유 어장에 밀려온 ‘영장’도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처리하였다. 공동 채취, 분배가 어려운 거름 해조류인 ‘듬북’, 공동 어획 분배가 불가능한 ‘자리그물’과 ‘목막이그물’인 경우는 마을 사람 대상으로 경매 입찰하였고, 그 수입금은 마을 살림 밑천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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