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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금재원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35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17 - 5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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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南郡을 대상으로 前漢 關外郡의 특성을 분석했다. 남군은 項羽 시기 長江 이남 지역과 더불어 臨江王에게 봉해졌지만, 漢帝國 건립 때에 임강왕은 이성제후왕 분봉에서 제외되어 한조정에게 숙청당했고, 이어서 秦郡縣과 동일한 체제를 회복했다. 당시 한조정은 일찍부터 남군 지역에 분봉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진군현 통치의 관성을 고려한 구상일 것이다. 먼저, 남군 ‘漢人’은 기본적으로 모두 남군 ‘秦人’으로부터 전환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임강국 통치 시기에 법률상의 망명자였고, 재차 군현 통치가 회복된 이후에는 진 호적에 근거해 편호민 신분을 영유했다. 남군 백성 중의 종군자에 대한 賜爵은 제후국 출신자에 비해 제한되었을 것이다. 남군은 反秦起義에 참여한 인원이 극소수에 불과했고, 楚漢 전쟁 때에도 漢軍에게 병력이 징발된 적이 없었다. 다음으로 남군의 군사 기능에 있어, 江南과 江淮를 모두 잇는 교통 중심이라는 특성상, 한조정은 이 지역을 반드시 직할할 필요가 있었다. 한조정은 남군의 직할을 통해 강남과 강회 지역으로 군현제를 확대했다. 예를 들어, 한초 洞庭湖 주변 지역은 모두 남군에 속했는데, 이는 훗날 武陵郡과 長沙郡 강역으로 재편된다. 이러한 초기의 조치로 인해 장사국 경내의 동정호 수도는 단절되었고, 한조정의 직할 역량은 강화되었다. 게다가 漢水 이동에 위치한 안륙성은 楚 시기에 수축된 대형 현성으로, 진이 점령한 후에도 폐치되지 않고 전한 전기까지 연용되었다. 전국 진 및 한초에 안륙성을 중심으로 舊六國 및 諸侯國과의 경계가 형성되어, 이 지역에 병력을 집중할 수 있는 군사 거점이 필요했던 것이 대형 현성의 유지로 나타났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武帝 元狩2년(B.C.121)에 江夏郡 설치를 기점으로 변화가 발생했을 것이다. 대략 이 시기에 郡·國 대치 국면이 종료되면서 남군의 변경적 특성 또한 소멸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남군의 장기 지속적 상황은 진한제국의 군현통치가 결코 중앙 일변도의 획일적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남군의 사례와 같은 각지의 지정학에 따른 다양한 양태를 추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한제국 군현제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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