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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송이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70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103 - 133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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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8세기 전반 역병의 대유행 때 일본 조정이 불교의술 활동을 통해 정치?사회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 글이다. 논지는 두 단계로 진행하였다. 먼저 8세기 전반 일본에 발생한 역병 양상 및 조정의 대응책을 검토하였다. 이어 승려들의 의료 활동 및 고묘황후의 지원과 같은 상황이 불교의술의 활용에 주는 영향을 추론하였다. 이 시기 역병은 735년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735년부터 737년간 유행했던 역병은 痘瘡(천연두)으로 추정되며 畿內지역에 대규모의 피해를 가져왔다. 특히 737년에는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후지와라 4형제를 포함하여 약 12명의 관인이 사망하는 등 지배계층 역시 역병에 노출되었다. 당시 일본 조정의 역병 대응책은 大赦, 藥師?湯藥의 賑給, 神祇적 대응, 佛敎적 대응 등이 있었다. 불교적 대응책은 735년 이후에 두드러졌으며, 주로 경전 轉讀, 승려의 佛寺 출가, 경전 강의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때 사용된 『大般若經』, 『金光明最勝王經』에는 불교의술에 관한 내용이 확인된다. 조정이 불교의술을 주목한 데에는 당시 교키(行基), 겐보(玄昉)와 같은 승려의 활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교키는 735년부터 737년간 布施屋을 치료시설로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겐보(玄昉)는 737년 쇼무천황의 모친인 후지와라노 미야코(藤原宮子)의 병을 치료하였다. 한편 고묘황후(光明皇后)와 8세기 전반 이후 일본에서 의약이 중요시되는 분위기 역시 주목된다. 730년 설치된 施藥院은 皇后宮職 소속으로, 약물 관리 및 환자 施療를 하는 慈惠醫院의 역할을 통해 불교의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였을 것이다. 또한 『東大寺獻物帳』 「種種藥藏」이나 『大日本古文書』 「買新羅物解」을 통해 일본에서의 의약 중요도와 수입 비중을 유추할 수 있다. 735년부터 737년간 역병의 대유행은 민심 동요와 사회 혼란을 가져왔다. 일본 조정은 국가 위기의 해결과 약화된 대민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불교의술에 주목했다. 한편 불교계는 조정과의 연계를 통해 중앙과 민간으로 교세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더불어 불교의술은 8세기 전반 이후 많은 의학서의 편찬과 함께 고대 일본 의학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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