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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노요한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84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65 - 10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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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긴 유배에서 사면되어 돌아온 김윤식은 이듬해 4월 中樞院 議長이 되고, 같은 해 8월 칙서를 받들고 英親王을 문후하기 위해 동경으로 떠난다. 1900년 8월 英王에 봉해지고 1907년 황태자에 책봉된 英親王 李垠(1897~1970)이 그 해 12월 유학의 명목으로 동경으로 건너가 체재하게 되자 그 문후를 위해 동경으로 향한 것이었다. 다만 김윤식의 이 동경행은 단지 영친왕의 문후만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김윤식은 일본에 체류하면서 여러 공식 일정을 수행하였으며, 특히 7월 29일에는 末松謙澄의 芝城山館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여 일본 내 각계 인사들과 시문 창화를 하였다. 김윤식 일행이 참석한 芝城山館의 연회는 당시 일본의 정치⋅문화계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참여하여 일대 외교의 장이 되었다. 기울어가는 나라의 사신으로서 침략국의 수장격인 인물 伊藤博文과 함께 침략국의 수도로 건너가 인질로 잡혀있다시피 하던 자국의 왕세자를 문후하고, 그곳 정치⋅문화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한 연회에 참석하여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공동문어(lingua franca)였던 한문으로 시문을 작성하여 주고 받는 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본고는 『동사만음』과 『芝城山館納涼唱和集』을 중심으로 1908년 김윤식의 일본 방문에서의 시문 창화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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