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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진성 (동명대학교)
저널정보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 기전문화연구 기전문화연구 제42권 제2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75 - 10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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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개항이 되면서 해안가의 어촌에 살던 조선인들의 거주지에 변화가있었다. 일본인들은 해안가의 조계를 중심으로 근대적인 시가지를 조성해 살았던 반면, 이곳에서 쫓겨난 조선인들은 그 주변의 구릉지를 삶의 터전으로삼을 수밖에 없었다. 개항을 전후해서 군산 원도심에 유입된 종교들은 이처럼 민족별 거주지가 이원화된 상황을 고려해서 선교거점을 확보하였다. 여기에는 종교 주체들의 선교전략이 반영되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선교 대상의 선정, 선교거점의 입지 선정 및 이전, 선교거점 안에 세워진 시설들의 공간 배치 등에 적용되었다. 종교마다 다른 선교전략에 의해 종교적 장소성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개신교와천주교는 조선인들을 선교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당시 조선인들이 주로 거주하던 구릉지에 교회와 성당이 세워졌다. 특히, 개신교 선교사들은 하천과바다를 통해 선교 범위를 넓히려고 포구가 있는 구릉지로 선교거점을 옮겼다. 이들은 이전된 선교거점에 교회, 학교, 병원 등을 세워 선교 활동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시설들의 공간 배치 또한 선교 활동에 유리하도록 조성되었다. 또한 원도심에 남아있던 신자들을 위해 새로 설립된 교회 역시 조선인 거주지가 있던 구릉지에 세워졌다. 둘째, 일본신도는 개항 초기부터 군산에 진출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종교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를 위해 군산신사는일본인들의 거주지와 가까우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구릉지의 중턱에 세워졌다. 하지만 일본신도가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배를 위한 도구로 전락되면서신사 본래의 종교적 장소성은 희석되었다. 광복이 되자마자 군산신사는 해체되고, 현재는 그 곳에 독립을 상징하는 경관들로 채워져 있다. 셋째, 일본불교는 일본인보다는 조선인들의 포교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일제는 일본신도와마찬가지로 일본불교를 이용해 조선인들에 대한 일제의 지배력을 높이려는수단의 하나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찰들은 조선인 거주지로 진입하지는 못하고, 민족별 거주지가 서로 겹치는 점이지대의 구릉지에 세워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한국불교에 계승되거나 또는 개신교의 교회로 바뀐 채그 자리에 남아 있다. 넷째, 일본개신교는 일본인들을 주요 선교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일본인 거주지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 교회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도 일본인 주거지가 있던 평지를 고수했다. 종교들마다 선교 대상은달랐어도, 근대이행기에 군산 원도심으로 유입된 종교들이 가장 선호했던 장소는 구릉이었다. 일본개신교만 이러한 입지 경향성에서 예외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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