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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영옥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76집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61 - 97 (37page)
DOI
10.33252/sih.2023.3.7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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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 국가 체제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 『人民日报』는 당 기관지로서 당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이글은 1949〜1997년 10월 1일 국경절의 『人民日报』 제1면 기사를 크게 두 시기로 나눠서 정치상황이 어떻게 신문에 반영되었는지 살펴보았다.
1949〜1978년 국경절 『人民日报』 제1면은 통합과 숭배의 상황을 반영하였다. 1949년에는 마오쩌둥 국가주석과 다양한 정파의 부주석들 사진이 실렸다. 1950〜1953년에는 마오쩌둥과 쑨원의 사진이 실려서 민족자산계급과 농민계급의 통합을 상징하였고, 1954〜1957년에는 불안정한 정세로 특정인의 사진이 없었다. 1958〜1965년에는 대약진운동과 조정정책의 상황에서 마오쩌둥과 류사오치의 사진이 실려, 당내 통합을 상징하였다.
1966년 류사오치가 숙청된 뒤, 마오쩌둥에 대한 개인숭배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1976년까지 국경절 『人民日报』 제1면은 대부분 마오쩌둥 1인 사진으로 채워졌다. 마오쩌둥이 죽은 뒤, 1977〜1978년에는 화궈펑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국경절 『人民日报』 제1면에 마오쩌둥과 자신의 사진을 실었다.
마오쩌둥 시대가 끝난 뒤, 1979〜1997년은 덩샤오핑이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였다. 20년 남짓한 덩샤오핑 시대의 국경절 『人民日报』 제1면에서는 최고권력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가 주석이나 당 총서기들도 과거처럼 국경절 『人民日报』 제1면의 절반 이상을 장식하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최고 권력자가 국가 주석으로 원로들을 내세우고 당 총서기에 자신의 심복을 앉혔던 상황을 반영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통합과 숭배(1949~1978)
3. 감춰진 권력(1979~1997)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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