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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헌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공연문화학회 공연문화연구 공연문화연구 제32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701 - 73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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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는 고구려에서 기원한 악기로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선비등 지식층의 애호 악기가 되어 ‘百樂之丈’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거문고의 우리 음악문화에서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하겠는데, 이 악기의 기원이 외래의 臥箜篌라는 것을 넘어 고구려의 거문고 자체가 부정되고 臥箜篌만을 인정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에 대한 한국 학자들의 반대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고구려의 거문과와 관련된 연구는 여러 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는데, 그 연구 주제는 주로 王山岳의 거문고 제작설을 인정하고,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거문고류 현악기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결국 초기에 부정되던 거문고 臥箜篌 기원설은 임겸삼의 주장대로 고구려 거문고가 모두 부정되는 것이 아니고, 왕산악이 晉의 臥箜篌를 개조하여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臥箜篌 기원설을 인정하고 그 시기가 언제인가에 연구의 초점을 둔 연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여럿의 거문고류 현악기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조금씩 달랐다. 이들을 비교하고 고구려 고분벽화의 거문고류 악기를 다시 검토해본 결과 8개의 고구려 고분에 나타나는 10개의 고구려 거문고류 현악기는 단순히 琴, 箏, 筑, 臥箜篌, 거문고로 단정 짓기 쉽지 않았다. 조금씩 그 형태와 연주자세, 괘와 술대의 유무, 줄의 수 등의 차이가 있는 것은 고분벽화의 정밀 묘사의 부정확성을 떠나서, 악기의 본질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고 또 그 내용이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그 명칭을 琴, 箏, 筑, 臥箜篌, 거문고라기 보다는 琴류, 箏류, 筑류, 臥箜篌류, 거문고류라 해야할 것으로 보았다. 이는 이들 악기와 고구려 고분벽화의 거문고류 악기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유된 생각인데, 이는 고구려에서 거문고가 정착되기 전에는 다양한 거문고류 현악기가 연주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삼국사기』의 王山岳 거문고 제적설에 너무 경도되어 있는 것도 문제로 보았는데, 그것은 고조선의 公無渡河歌, 즉 箜篌引에 등장하는 箜篌, 즉 臥箜篌를 고려한다면 『삼국사기』의 王山岳 거문고 제작설은 믿기 어려우며, 고구려보다 더 이전 시기부터 거문고류의 현악기를 연주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무도하가와 비슷한 시기라 할 수 있는 기원전 3-4세기의 악기로 新疆지역에서 箜篌가 발굴되었는데, 이 시기에는 이 지역이 중국에 속한 곳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중국의 箜篌는 외래 악기가 분명하고, 중국에 전래된 이후 琴, 瑟, 箏 등 악기의 영향으로 臥箜篌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李娜, 「卧箜篌起源考」, 『천뢰-천진음악학원보(http://www.zgyysxw.com/)』, 2010-07-28. 그 시기는 魏晉시대의 고분에 괘가 있는 臥箜篌류 악기의 그림과 토용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빨라도 漢代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중국에서는 아직 箜篌가 전래되기 전에 이미 고조선에는 箜篌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그 전래 과정은 중국을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또 臥箜篌가 외래의 세워 연주하는 하프류의 箜篌를 뉘여 연주하는 악기로 개조한 중국의 악기로 주장하는 것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즉 중국에 臥箜篌가 생기기 이전 또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이미 고조선에 臥箜篌가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문고의 기원이 된다는 臥箜篌의 發生地는 혹시 古朝鮮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겠다. 설혹 漢 武帝 때 箜篌(臥箜篌)가 만들어 졌다는 설이 사실이고 이에 따라 뉘여타는 箜篌, 臥箜篌가 漢代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삼국사기』의 王山岳 거문고 제작이 晉에서 전래된 臥箜篌를 개조한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古朝鮮에 이미 臥箜篌로 추정되는 箜篌가 있었으므로 고구려 사람들이 晉에서 전래된 七絃琴(臥箜篌?)을 몰랐을리 없기 때문이다. 또 이 七絃琴이 중국 전통의 琴이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漢의 문화와 교류가 많아서 漢의 鼓吹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漢의 琴 역시 이미 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晉에서 전래된 七絃琴이 琴이더라도 고구려 사람들이 그 연주법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거문고를 굳이 晉에서 전래된 七絃琴을 개조하여 만들었다는 것을 신뢰하기 어렵다. 앞에서 살핀 여러가지 상황으로 보아 고구려의 거문고는 琴이든 臥箜篌든 중국에서 전래된 악기를 개조해서 만들었다기 보다는 고조선에서부터 내려오던 거문고류 현악기를 개량하여 만들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다만 琴이든 중국에서 만들어진 箜篌든 혹은 箏 瑟 筑 등의 악기가 고구려에 전래되었다면 이들이 거문고 창제에 참조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것 같다. 그러나 거문고 창제의 원형을 굳이 외래 악기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구려 전래의 거문고류 현악기가 있었고 이를 토대로 외래의 현악기를 참조하여 거문고를 창제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좀 더 많은 자료를 찾아 연구해야 확실하게 밝힐 수 있는 문제라 하겠으나, 적어도 『삼국사기』의 王山岳 거문고 제작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고구려 거문고를 보는 시각을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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