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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용태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42호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73 - 97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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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 김윤식(1835~1922)은 한국의 정치사와 사상사, 문학사에 있어 매우 비중 있는 인물이기에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왔고, 그 문집이 완역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앞으로 연구가 더 심화되기 위해서는 『운양집』에 실린 ‘친일적’ 면모를 정면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과제가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고에서는 서로 활발하게 교유하였던 김윤식과 末松謙澄(스에마쓰 겐초, 1855?1920)의 문집을 검토하여 그 시문수창의 양상과 의의를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두 사람의 수창은 매우 우호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나, 그 심층에는 서로 대치하는 국면도 존재하고 있었다. 김윤식은 ‘爲民’, ‘安民’과 같은 유교의 道를 강조하며 末松謙澄을 견인하고자 하였던 반면에, 末松謙澄은 ‘大局’과 ‘形勢’를 강조하며 김윤식에게 일본의 우월적 지위를 승인하도록 압박하였다. 이러한 대치가 비록 전면화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末松謙澄이 적극 주선하여 김윤식이 제국학사원상을 받을 수 있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가 이후 단절되고 말았던 원인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末松謙澄의 경우, 동아시아의 유구한 한문학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이는 결국 일본을 새로운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를 욕망하였다는 점에서 이후에 전개되는 ‘대동아론’의 전조가 된다고 볼 수 있으며, 김윤식의 경우는 삼일운동을 맞아 유교적 대의를 내세우며 일제 당국에게 독립을 요구하게 되는 하나의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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