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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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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58호
발행연도
2023.8
수록면
111 - 153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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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기 남북조 시대, 돈황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북방 정권 통치 아래에 있었다. 581년부터 돈황은 隋(581~618)와 唐(618~907) 제국에 소속되었고, 781년까지 吐蕃에게 점령되었다. 吐蕃이 돈황을 점령한 지 60여 년이 지난 848년에 張義潮에 의해 吐蕃의 통치자가 축출되었다. 張義潮가 당나라로부터 歸義軍節度使라는 직함을 받으면서 이후 181년 동안 돈황의 歸義軍시기가 시작된다. 돈황 歸義軍의 통치기간은 張氏歸義軍(851~914)과 曹氏歸義軍(914~1036) 두 개 시기로 나누어진다.
돈황 歸義軍은 晚唐, 五代, 宋 세 개 시대에 걸쳐 돈황 瓜州와 沙州 지역을 통치하였다. 역대 節度使들은 중원 왕조로부터 황제의 칙령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晚唐, 五代, 宋시기에는 중원 왕조 정권이 약해지면서 돈황은 북서쪽 외딴 곳에 위치한 이유로 사실상 독립된 歸義軍 정권의 소국이 되었다. 이렇게 지방 정권이 대두된 이 특별한 시기에 막고굴을 중심으로 돈황의 불교 석굴 개착은 또 다른 절정을 이뤘다. 특히 10세기 曹氏歸義軍시기에는 화공과 관련된 문자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을 정도로 불교 석굴 개착은 활발하였다. 이 시기 돈황 화공은 벽화 속의 공양인으로도 변모하였을 정도인데 석굴벽화에는 화공의 관직을 과시하는 제기가 남아 있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藏經洞에서 출토된 문서에도 화공에 관한 문자자료가 군데군데 남아 있다. 문자자료 외에도 藏經洞에서 출토된 草本에는 당시 화공들의 돈황 불교회화 제작방식과 함께 화공들 사이의 조직관계에 관한 여러 가지 단서가 담겨 있다.
본 논문은 현존하는 석굴 벽화에 쓰여 있는 화공 공양인 제기와 사찰 수지장부에 남아있는 화공에 관한 문자자료, 그리고 장경동에서 출토된 草本을 통해 벽화의 제작 과정 및 화공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았다. 아울러 10세기 돈황 화공 활동의 특징 및 당시 사회배경과 화공 조직에 관해 조사하여 이를 바탕으로 당시 曹氏가족에 의해 개착된 석굴벽화 및 장경동 공양인 불화 제작의 특징과 화공의 지위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돈황석굴 草本과 불교회화 제작의 특징
Ⅲ. 불교회화를 통해 본 화공 조직의 형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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