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선아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47호
발행연도
2023.6
수록면
183 - 215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홍재일기(鴻齋日記)』는 전라도 부안군 주산면[당시 남하면] 홍해마을에 거주하였던 기행현(奇幸鉉; 1843-?)이 1866년부터 1911년까지 쓴 일기이다. 기행현은 『홍재일기』에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된 고부, 태인, 남원, 전주 등 인근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에 대한 소식과 소문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는 동학여당(東學餘黨)이라고 지칭된 영학당(英學黨)과 화적(火賊)의 동향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영학당을 ‘동비(東匪)의 여얼(餘孼)’로 간주하였고, 의병도 동학과 같은 무리로 탄압하였으며 활빈당(活貧黨)과 수적(水賊) 등도 동학에 뿌리를 두었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동학여당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진회(一進會)가 조직되었고 부안에서도 일진회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등장하였다. 일진회는 지방의 관권에 개입하고 마을의 행정에도 관여하였다. 일진회원이라고 위세를 부리며 무리를 일으키는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일진회의 위세는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호남에서도 의병이 일어났다. 의병의 투쟁은 1907년 고종의 퇴위와 한국군 해산 등으로 더욱 강경해졌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동학여당은 을사늑약과 정미조약 등 일본의 국권 침탈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왜병과 접전(接戰)하면서 의병으로 전환되어 일제의 침략에 맞서 항전(抗戰)하는 대열에 합류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