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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지배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64집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37 - 82 (46page)
DOI
10.17857/hw.2023.12.6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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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후기 킵차크 세계’의 국제 질서 속에서 러시아의 서시베리아 점령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봉신 관계와 조공 관계라는 국제 질서의 틀 안에서 킵차크 계승 국가들과 경쟁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이반 4세는 ‘킵차크 칸의 집’으로 불리던 카잔을 점령한 후 국제적으로 새로운 지위를 인정받고 싶어 했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제후국들로부터 공물을 징수하려 했다.
이반 4세가 ‘유리예프 공물’ 납부를 거부한 이유로 리보니아와 전쟁을 시작한 것처럼 시비리 칸국과 대립한 것도 1573년 쿠춤 칸이 러시아의 제후국임을 거부하고 공물을 납부하지 않았던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반 4세는 시비리 칸국을 봉신국으로 삼으려 했지 직접 점령할 생각은 없었고, 에르마크의 카자크 부대를 시비리 칸국으로 파견한 스트로가노프를 질책하며 이를 되돌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가 시비리 칸국을 본격적으로 자국에 병합하려 한 것은 이반 4세 시기에 무너진 국가 체계를 정상화하려 했던 보리스 고두노프 통치기였다.
전반적으로 러시아의 서시베리아 정복은 유럽의 아메리카 정복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에스파냐인들은 원주민들이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을 벌일 정도로 그들을 이질적 존재로 보았지만 러시아인들에게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단지 이교도였을 뿐이다. 러시아인들과 타타르인, 여러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서로 다른 종교 문화를 가졌지만, 서로 연결된 공간에서 킵차크 칸국 때 형성된 국제 질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한편 시비리 칸국 점령은 러시아가 봉건적 차르국(칸국)에서 중앙집권적 제국으로 변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16세기 킵차크 세계의 재편과 모스크바국
Ⅲ. 모스크바국의 시비리 칸국 점령
Ⅳ. 러시아의 서시베리아 통치와 야사크 징수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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