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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무정 (덕성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47號
발행연도
2024.2
수록면
277 - 300 (24page)
DOI
10.14769/jkaahe.2024.02.4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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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호놀룰루 미술관 관장 로버트 그리핑 주니어(1914-1979)가 왜 1947년 한국미술전람회를 꾸준히 추진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를 추진한 주역은 그리핑(Gripping)과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체원(1909~1990)이다. 이 밖에도 포그 박물관 관장 랭던 워너(Langdon Warner, 1881~1955), 주한미군사령부 교육부 문화국장 월터 데이먼 기퍼드(Walter Damon Giffard, 1909~1965)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미술전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연구자는 로버트 그리핑 주니어(Robert P. Griffing, Jr.) 관련 주요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호놀룰루 미술관 아카이브(Honolulu Museum of Art Archives)와 랭던 워너(Langdon Warner)의 서신을 소장하고 있는 하버드대학교를 방문했다. 발굴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1947년 한국미술전에 대한 그리핑의 구상부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로 계획이 좌초되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한국미술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리핑이 미술관 활동에 쏟은 열정과 한국미술에 보여준 애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핑은 30대 초반에 호놀룰루 미술관 관장에 부임하여 동서의 중간에 자리한 하와이의 문화적 정체성을 호놀룰루 미술관에 확고히 구현하려는 야심을 품었고, 그러한 야심은 문화적 지식의 상호교환을 통한 국제 이해와 상호존중이라는 유네스코와 이콤의 이상에 대한 그의 신념과 결합하면서 그의 평생의 열정을 만들어 냈다. 특히, 호놀룰루 미술관을 동서문화 교류의 교두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그의 야심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리핑이 조우한 한국미술은 그의 미술관 인생에서 나침반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잊힌 역사가 되어버린, 동서문화 교류를 위한 그리핑의 노력은 충분히 재조명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문화와 미술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이해를 확산시키고자 했던 그리핑의 열정은 한국전쟁 이후 실제로 《한국국보전》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미묘하게 변해간 것으로 보인다. 그 변화의 과정에 대한 고찰은 또 다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로버트 그리핑 관장과 호놀룰루 미술관
Ⅲ. 한국미술전과 유네스코
Ⅳ. 한국미술전과 미국 국무부 및 미술관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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