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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윤주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53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105 - 142 (38page)
DOI
10.31218/TRKH.2024.3.15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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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초기의 개국·좌명공신 이직(李稷)의 삶과 정치활동을 다루었다. 이직은 고려 말에 숙부 이인임의 실각, 윤이·이초사건 등을 겪으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지만, 정몽주의 제거 이후 이성계 세력으로 편입되었다. 조선 건국 후에는 개국공신에 책봉되어 대명 외교, 한양 건설 등에서 활약하였다. 그런데 제1차 왕자의 난 발생시에 정도전 세력에 속했다가 변란이 끝난 이후 태종의 정권에 협력하는 면모를 나타냈다. 그는 곧 좌명공신에 책봉되었으며, 관제·의례 정비, 외교, 한양의 기간 시설 완성 등 제반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하지만 1415년(태종 15) 민무휼이 죽임을 당하면서 그의 장인인 이직 역시 7년 가까이 정계에서 배제되었다. 1422년(세종 4) 이직의 정계 복귀는 태상왕 태종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이는 세종 친정 이후 의정부를 맡을 만한 인물로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외교, 의례, 법제 등의 운영 면에서 오랜 경험이 있었고, 이전 태종대에 육조 직계가 행해졌을때 의정부의 각료로서 그 운영이 어떻게 행해져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세종대 초기 정치 기반 구축에 조력자 역할을 하기에 적절한 인물이었다.
이처럼 여말선초의 정치 변동기에 이직은 상당히 오랫동안 정계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 이성계 반대 세력에 있다가 조선 건국에 참여하며 개국공신에 책봉되는 과정,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정도전 세력이었다가 태종 집권을 수용하며 좌명공신에 책봉되는 과정이 명쾌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이직이 민무휼 옥사에 연루되었을 때 태종이 그의 과거 행적을 ‘반룡부봉’으로 평가했다는 점은 참고가 되는데, 이는 그가 정국 변동을 주도했다기보다 이미 가시화된 정치적 동향에 순응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어찌 보면 그는 여말선초의 권력 변동에 매우 유연하게 대처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관료로서의 직분을 다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특히 태종 즉위 이후 조선의 정치체제 확립 과정에서 그의 역량은 가장 적극적으로 발휘되었다. 그리고 1422년(세종 4)정계 복귀 이후에는 친정을 하게 된 세종의 정치적 기반 구축에 조력했으며, 기존에 태종이 계획했던 정치체제를 후대에 이어나가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가문 배경과 관직 진출
Ⅱ. 공신 책봉과 정치활동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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