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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한신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53집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45 - 8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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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초기 조선은 명의 군사지원을 받는 데서부터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설 수 있었다. 1592년 7월 부총병 조승훈의 평양성 공격은 실패했으나, 1593년 1월 제독 이여송은 평양성전투에서 승전하여 성을 수복할 수 있었다. 이후 조선 조정의 관심사는 명군과 함께 한성을 협공하여 수복하고 일본군을 조선에서 격퇴하는 것이었다. 1593년 1월말 명군이 벽제관전투에서 패전했으나, 조선 조정에서는 명군에 진격을 촉구했다. 이 때 조선 조정과 명군지휘부 사이의 견해차가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경략 송응창으로 대표되는 명군지휘부에서는 명군의 희생을 줄이면서 전쟁을 마무리 지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송응창은 일본군과의 교섭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명군지휘부에서 즉각적으로 조선 조정의 공격 요청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선 조정에서는 명군지휘부와의 소통을 긴밀히 유지해야 했다. 명군지휘부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알아두고 있어야 했으며, 이를 근거로 명군지휘부와의 견해차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조정으로서는 명군의 협조가 불가결했는데, 그러한 협조는 명군지휘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었다. 이러한 지점이 고찰되어야 임진왜란 초기로부터 1594년 강화교섭 국면으로 이어지는 전쟁의 전개가 선명히 드러난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평양 수복 이후 조선 조정의 명군지휘부 접촉 노력
3. 경략 송응창의 조선 조정 인식과 기본 책략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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