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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명섭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21세기정치학회 21세기정치학회보 21세기정치학회보 제34집 제2호
발행연도
2024.6
수록면
1 - 22 (22page)
DOI
10.17937/topsr.34.2.2024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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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표는 청일전쟁(1894~95) 이후 이승만의 탈중화적 변모(變貌)와 독립사상을 추적, 분석하는 것이다. 청일전쟁 중에 실시된 갑오경장으로 과거제가 폐지되자 조선의 청년 이승만은 사서삼경 대신 신학문을 배우며 중화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중화적 세계관의 신체적 상징이었던 상투도 잘랐다. 그는 고종황제가 표방한 국제적 독립을 지지했지만 청나라 대신 명나라를 숭상하는 소중화주의적 전제정치로는 독립을 보전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독립협회에 참가한 이승만은 독립을 보전하기 위해 전제정치를 헌법정치로 바꾸려 했고, 민주정치는 아직 “동양 천지에서는 … 위험한 생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인식은 조청일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청일전쟁의 한 축을 형성했던 동학농민봉기에 대한 그의 비판적 입장과도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1899년 한성감옥서에 수감된 직후 개신 기독교인이 되면서 근대적 개인에 기초한 독립사상을 내면화했다. 이 점은 똑같이 반일독립운동에 나섰지만 소중화주의적 복벽(復辟)을 추구했던 이승희와 같은 유교 지식인과 이승만의 차이였다. 다른 한편으로 이승만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주어진” 독립을 무조건 환영하기 보다 비판적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청나라에 대한 일본의 승리 이후 탈중화적 개화 지식인들이 빠져 들었던 ‘친일의 덫’을 회피할 수 있었다.

목차

요약문
Ⅰ. 서론
Ⅱ. 청일전쟁 이후 이승만의 탈중화적 변모
Ⅲ. 청일전쟁 이후 옥중 저술에 담긴 이승만의 독립사상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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