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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안재호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호남고고학회 호남고고학보 호남고고학보 제76권
발행연도
2024.2
수록면
6 - 44 (39page)
DOI
https://doi.org/10.55473/JHAS.2024.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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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대상이 된 예래동유적은 제주 남부지역에 위치하는 대형취락의 일부분 구역으로, 구릉 말단부를 구로써 구획한 독립공간에 해당한다. 주거지 265동과 수많은 수혈에 대한 계기연대법을 통해 5개로 양식편년하였다. 예래동유적은 탄소14연대에 따르면 대략 기원전 350년 전후에서 기원전 10년 전후의 시간대에 형성되었고 송국리형취락사회에서 탐라국으로의 교체기에 해당하는 취락이다. Ⅰ기에는 소수의 핵가족이 이주해와 흩어져 거주한다. Ⅲ기에 접어들면 인구가 증가하고 대형가옥이 등장하면서 생산활동의 주도권을 가졌으나 핵가족체의 군집인 세대공동가족체가 많아지는 경향을 보일 뿐 식료 증대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Ⅳ기에는 가옥의 수는 더욱 증가하고 동경과 무기형의 청동기와 철기가 도입되며 식료처리구도 압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당연히 잉여생산이 발생하였다고 판단되는데 대형가옥의 조영이 보이지 않아 보존구역에서 대형가옥을 찾아 이곳에 거주하였던 주인공을 취락을 대표하는 수장으로 상정하였다. 예래동취락에서는 잡곡 재배의 농경활동도 있었지만 어로활동이 중심이고 이에 따라 막대한 잉여생산도 가능한 제주의 환경에서는 농경사회가 아니라도 수장의 권한을 확대할 수 있고 결국엔 탐라국의 성립에 이를 수 있었다는 추정을 할 수 있었다. 그 권력의 중심에는 농경사회보다 더욱 공고한 가족체의 지배계층화가 두드러졌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후 예래동취락을 비롯한 남부권 취락은 탐라시대로 접어들면 대부분 축소되어 간다. 이것은 탐라의 등장과 함께 중심취락이 서북부지역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남부권 취락의 주민집단도 분산되거나 이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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