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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윤철 (난징대학교)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75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167 - 20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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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년(조선 明宗 7, 명 嘉靖 31) 5월 제주도 천미포(川尾浦)에 왜구가 상륙하여 전투가 벌어졌고, 생존한 왜구 30여 명이 한라산에 숨었다가 탈출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가리켜 천미포 왜변이라 부른다. 16C부터 중국 동남 연해지역과 일본 간의 사무역이 활발해지고, 1552년부터 는 대규모의 왜구가 중국 동남 연해 침입을 시작하기 때문에, 천미포 왜변은 일반 적으로 16C 해양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해 왔다. 하지만 기존의 천미포 왜변에 대한 연구는 한국 문헌 분석을 위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논문에서는 정약증의 ≷강남경략≸과 중국의 각종 ≷지방지≸들을 검토 했고, 같은 해 7월(혹은 5월)에 중국의 보산(현 上海市浦東新區高橋鎭 일대), 그리 고 7월에 태창주(현 江蘇省太倉市)와 숭명현(현 上海市崇明區)에 각기 왜구가 나타났으며, 이 중 숭명현에 나타난 왜구들은 선주 龔十八과 함께 조선에 표류해 들어갔다가 탈출했음을 확인했다. 표류지의 정확한 지명은 나와 있지 않으나, 한ㆍ중 간 사료에 나타난 기간 및 인적 구성원 등의 비교를 통해서 제주도 천미포에 표류한 왜구와 숭명현에서 항복한 왜구들이 동일한 집단임을 확인했다. 1552년은 왜구의 대규모 중국 동남 연해지역 침입이 시작된 해였는데, 왜구가버리고 간 선박에서 조선은 명나라 화기를 발견했고, 왜구가 처음 천미포에 상륙했을 당시 군사 전문가 집단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보산에 나타난 왜구가 바람으로 인해 절강성으로 부터 진입한 왜구였음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천미포 왜변을 일으킨 왜구도 절강성을 약탈하던 와중 표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이를 통해 단순한 표류 사건이 아니라 16C 중반 동아시아 해역에서 일어난 후기 왜구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임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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