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강산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역사학연구소 역사연구 역사연구 제51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211 - 244 (34page)
DOI
10.31552/jh.2024.09.51.21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간토대학살 이후 일본에 거주하던 많은 수의 조선인은 조선으로의 ‘귀환’을 결심했다.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1923년 9월부터 10월까지 귀환길에 오른 조선인 수는 2만 8천 명을 웃돌았다. 같은 해 1월부터 8월까지 조선인 귀환자 수는 약 4만 9천 명이었다. 간토대학살 이후 평균 두 배 이상의 조선인이 조선으로 귀환한 것이었다. 이는 분명히 이질적인 현상이었다.
본 글에서는 간토대학살 이후 목격되는 조선인의 귀환 현상의 특징을 분석하고 귀환자의 행위유형을 구분하였다. 우선, 조선인 귀환 관련 정책을 수립 운용한 주체와 실제 규모를 밝혔다. 조선인의 귀환은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의 협의 과정을 거쳤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인을 송환하고자 하는 일본정부의 입장이 강하게 작동하였다. 그 결과 조선인의 귀환은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째 시기에는 귀환 정책이 수립되기 전으로, 지진이 발생한 직후 피해 지역으로부터 귀환하였다. 둘째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귀환이 시작되면서, 부산을 통한 대규모 이동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주로 피해 지역 바깥에서 거주하던 노동자들이 대거 귀환하였다. 셋째 시기는 조선총독부출장소가 운영하던 아오야마 수용소로부터 귀환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귀환한 이들은 지진과 학살, 수용소의 경험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조선인 귀환자의 유형을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행위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기존의 연구는 주로 관청사료 속에서 목격되는 유학생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본 글에서는 그들의 행동을 ‘발화’와 ‘침묵’으로 구분하여 귀환자의 다양한 결을 추적해보고자 했다. 특히 ‘저항적 발화’외에도 식민권력의 보호조치에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하는 오성근의 사례나, 조선인 학살을 목격하고서도 적극적으로 발화에 나서지 않고 침묵했던 진판옥의 사례에 주목했다. 이들은 식민권력에 대한 저항과 협력 바깥에서 간토대학살의 경험을 안고 살아간 수많은 조선인 귀환자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조선인 귀환에 관한 통계
Ⅱ. 조선인 귀환의 특징
Ⅲ. 귀환자의 발화와 침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151-25-02-090906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