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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인호 (동의대학교)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29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279 - 31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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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침략전쟁 시기(1931~1945) 조선 마정을 연구대상으로, ①만주사변 이후 시작된 제2기조선산마계획의 추이, ②중일전쟁 전후 총독부 주도의 제1기 조선마정계획 수립 과정, ③태평양전쟁시기 조선마사회를 주도의 마사 정책과 애마운동이나 건마보국운동 등을 분석하여 식민지 마정이 가지는 수탈적 동원 실상과 그 기만성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먼저, 만주사변 이후 군마 수요가 증가하면서 총독부는 1932년부터 제1기 산마계획을 통하여 북선3개 도를 중심으로 3만 마리의 군마를 확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1935년 일본은 조선총독부에 18개년동안 총 4만 마리를 확충할 것을 요구했고, 이윽고 같은 기간 5만마리까지 증산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에 총독부는 ‘조선의 현실’을 빙자하면서 15년간 3만 마리 확충을 주장하는 등 1년 여의 줄다리기끝에 결국 ‘15년간 4만 마리 확충’을 담은 ‘조선마정15개년계획’을 타결하였다. 그런데 재원 문제로 마정계획 시행은 지지부진하였다. 게다가 제2마정구인 함남의 경우처럼 약 16,000마리를 1939년부터 1951년까지 14개년간 확충하기로 했지만 주로 빈‧모마 9천여 마리를 본토에서 이입하는 방식을채택하였다. 따라서 증산보다는 이입에 방점이 있었다. 말은 통계 가능한 1938년까지 감소세에 이어서 당나귀, 노새는 1943년까지 급감하였다. 일본도1938년 이후 본토의 마정계획에서 조선의 비중을 줄이고 만주의 비중을 높이는 등, 조선 마정계획은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총독부는 이런 실패를 정책 실패가 아닌 민간 사육자의 지식 부족과 열의부족에 이유를 돌렸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총독부는 군마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면서, 기존 ‘조선마정15개년계획’을관변화된 민간기구인 조선마사회를 설립하여 실질적인 운영을 맡기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42년4월 1일 조선마사회가 설립하였다. 마사회는 ‘본토의 우량 말과 교배를 통한 군마를 증산한다.’는 기존계획을 형해화하고, ‘기존 조선말을 단련하여 군마로 전환한다.’는 동원 정책쪽으로 선회하였다. 게다가 그나마 북선지역 마정구의 군마증식도 1944년 초까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마사회장은‘당시 마정구에 수용된 말들의 태반이 무용지물인 고장난 말들’이라고 실토할 정도였다. 요컨대, 총독부는 군마 4만마리를 증산한다고 장담했지만 증산보다는 조선말 동원이나 일본말수입이 우선이었고, 조선군조차 조선산 말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증산보다는 동원과 염출을 선호하였다. 건마보국운동조차 정신운동화하면서 애꿎은 당나귀, 노새를 포함하여 조선산 말들의 감소만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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