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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원석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유학연구 제68권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1 - 2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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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관료였던 지포 김구(止浦 金坵, 1211~1278)가 안향(安珦)보다 먼저 성리학을 고려에 소개했을 가능성이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이 논문은, 김구가 원나라의 왕악(王鶚, 1190~1273)과 긴밀히 교류했다는 기존 연구 성과에 주목하여, 왕악의 행적, 저술, 교류 인물을 검토함으로써 김구가 왕악과의 교류를 통해 접했을 법할 유학의 성격을 유추하고자 했다. 왕악은 금나라 말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으나 금나라가 패망할 무렵 원나라에 귀순했고, 같은 처지에 있던 동평부학의 사인들과 긴밀하게 교류했다. 동평사인들은 구양수와 소식을 추숭하고 실무 능력에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한편, 왕악은 왕약허와 조병문을 존경하였는데, 이 중 왕약허는 장구성 계열의 성리학을 접하고서, 구양수의 인정(人情) 개념에 입각하여 그 사변성을 비판하였다. 한편, 왕악은 『여남유사(汝南遺事)』에서 동치천하(同治天下)적 정치사상을 표명했다. 이 글은 왕악과 그 주변 인물의 유학 사상은 성리학이 아니라 북송대 고문운동 계열, 특히 구양수의 학문으로부터 영향 받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김구가 성리학의 존재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왕악과 긴밀하게 교류한 이상 그에게 실제로 영향을 끼쳤던 것은 오히려 구양수를 중심으로 한 북송대의 유학 사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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