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秦帝國과 이를 계승한 漢帝國의 시대를 이해하는데 있어 관건이 되는 문제는 ‘帝國’이 어떤 방식과 제도를 가지고 ‘中國’이라고 하는 거대한 공간을 지배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지배를 위해 秦漢帝國은 郡과 縣이라고 하는 지방행정기구를 설립하고, 황제의 대리자인 관료를 파견해 지방을 통치하도록 하는 郡縣制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郡縣制가 실시되고 다양한 통일정책이 시행되었다고 해서 帝國의 각 지방이 황제의 일률적인 지배하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帝國’ 지배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황제를 정점으로 한 중앙 관료기구의 명령이 郡縣의 관리들에 의해 실제 시행되어 鄕里 사회에까지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도록 하는 행정체계가 정비되어야만 했다. 만약 황제나 중앙의 명령이 지방으로 전달되지 못하거나, 전달되더라도 실제 시행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지방 鄕里 사회에 대한 皇帝의 지배력은 유명무실하게 되고, 帝國의 통일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중앙과 지방의 관료 행정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중앙의 명령이 구두 형식으로 전달된다면 전달 과정에서의 전달 내용 變改, 명령 집행에 대한 책임 회피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秦漢帝國은 제국의 모든 행정적 처리가 문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하는 文書行政의 체계를 일찍부터 갖추고 있었으며, 이런 文書行政체계의 완비는 秦漢代의 郡縣制가 유지되고 帝國체제가 원활하게 기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文書行政체계라고 하는 것은 국가 통치를 위한 모든 행정적인 업무 처리가 문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문서를 통해 중앙의 명령이 지방에서 시행되고, 지방의 각종 상황이 중앙으로 집약됨으로써, 중앙과 지방의 각 관료기구가 긴밀히 연결된 것이다. 즉 문서행정체계는 帝國을 하나로 묶는 일종의 ‘끈’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中國과 같이 거대한 공간을 동일한 ‘帝國체제’하에 묶어 통일적 지배를 가능하게 한 관건적인 기제였다. 그리고 이렇게 완비된 문서행정체계를 따라 지방의 기층 사회까지 전달된 行政文書는 일반 백성들과 같이 문자 해독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황제의 권위를 보여주는 실제적인 상징물로서도 기능하며, 帝國체제가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물로서 비춰졌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秦漢代의 행정문서가 작성, 발송된 후 수신기관에서 처리되기까지의 각 과정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제1장에서는 秦漢代 詔書를 비롯한 행정문서가 중앙으로부터 州와 郡에 전달되기까지의 과정과 방법을 문서행정의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제2장과 제3장에서는 실제 문서에 기록된 명령이 시행되는 행정적, 공간적 범위인 縣에서의 문서처리 과정을 秦代와 漢代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시 문서행정체계에서 縣이 일정한 기준 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제4장에서는 前漢 중후기 서북 변경지역의 문서전달 노선과, 이들 노선에서 실제 문서전달을 담당한 중간 驛站기구의 설치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置, 騎置(驛), 亭(隧)으로 구성된 3급의 郵傳기구가 문서전달의 노선 상에 배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제5장에서는 秦漢代 郵, 亭, 傳, 置, 驛 등 각종 郵傳기구가 설치된 배경 및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들 郵傳기구 기능의 변화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처럼 秦漢帝國은 문서행정이 일정한 체계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는 많은 조치를 취하였는데, 문서행정의 체계라고 하는 것은 행정문서의 작성, 발송, 접수, 처리를 담당하는 각 급 행정기관과, 이들 행정기관 사이에서 실제 문서의 전달을 담당하는 郵傳기구, 그리고 문서 전달자가 이용하는 도로, 교통수단, 숙박시설 등의 제 요소가 일정한 체계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원활한 행정문서의 통행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완비된 체계를 따라 각 급 행정기구에서 작성한 문서가 빈번히 왕래함으로써 실제적인 帝國의 통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秦始皇이 국가 대소사를 모두 처결하며 매일 처리할 행정문서의 일정한 양을 정해둔 후 이를 모두 처리하지 않으면 휴식하지 않았다고 하는 고사나, 蕭何가 漢 高祖 劉邦을 따라 咸陽에 입성한 후 丞相府와 御史府의 圖書, 律令 등의 문서를 장악해 漢이 天下를 통치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는 기사는 모두 秦漢帝國이 문서행정을 통해 일반 民에 대한 지배를 관철시켰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秦漢代 문서행정체계는 황제를 정점으로 帝國의 통치를 담당한 중앙 정부와, 실제 통치의 대상인 지방 관료기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동시에 鄕里의 통치기구로 설치된 郡?縣과 실제 民이 거주하는 공간인 鄕里 사이를 하나의 구조 안에 통합시키는 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郡縣制를 근간으로 한 秦漢帝國의 통치체제는 ‘中央-郡縣-鄕里’를 구조적으로 연결시킨 문서행정체계에 의해 효율적으로 기능한 것이다. 秦漢의 帝國체제가 성립하기 이전의 국가 지배제도인 周代의 封建制가 ‘王-諸侯-卿大夫-士’를 하나의 질서로 묶어주는 의제적 가족질서인 宗法制에 의해 기능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秦漢帝國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문서행정체계 연구가 가진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고의 秦漢代 문서행정체계에 대한 연구는 단순한 古代 중국의 행정제도에 대한 연구를 넘어, 秦漢帝國의 시대적 특징과 그 이전 시대와의 차별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연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