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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김동현 (국민대학교, 국민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정선태
발행연도
2014
저작권
국민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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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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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 시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국민국가라는 중심의 자장이 ‘제주’를 어떻게 발견하였는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식민지시기 ‘제국-일본’에 의해 포착되기 시작한 ‘제주’ 표상은 조선 본토와 제주를 차별화하는 동시에 제주를 일본과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식민지 시기 수많은 일본인 통치기구와 일본인들에 의해 행해진 주요 연구와 기행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제국의 시선은 식민지 시기 제주의 타자성을 지우고 그 자리에 일본적인 것을 상상함으로써 제주를 일본의 지리적 영역으로 상상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인 지식인 엘리트들은 ‘제주’를 조선의 내부 식민지로서 인식하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제주를 상상할 때 한라산과 제주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다. 민족적 신성의 공간으로서의 한라산과 그 밖의 잉여들의 집합으로서의 제주는 서로 다른 표상으로 상상되고 재명명되었다. 이것은 신성성과 엑조티즘적 시선이 교차하면서 제주의 표상을 특징짓는 질료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라산의 잉여로서 제주를 상상할 때는 내면화된 제국주의적 시선이 드러난다. 이러한 시선은 피식민자인 조선인 지식인 엘리트가 제국의 식민지성을 내면화하고 식민지 내부를 상상적으로 재구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즉 식민지 시기 조선의 지식인들의 제주기행은 한라산과 제주를 분절하여 상상함으로써 국토의 신성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제주를 식민지 내부에 또 다른 식민 지대로서 인식하면서 식민지적 자기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일련의 지리적 탐험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족적 경계 사이를 유동하는 제주인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식민지 시기 제주는 조선 본토보다는 일본과의 지리적 유대감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제주인들은 일상적 체험으로서 일본을 마주해야 했다. 제주는 조선을 경유하지 않은 채 일본이라는 근대와 직접 대면하였다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식민지 시기 근대의 경험이 균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경험의 양상도 사뭇 달랐음을 보여준다. 즉 민족적 경계라는 확고한 중심에서 벗어나 유동하는 존재로서, 제주는 근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식민지 제국과의 동일성과 조선의 내부로서 식민자의 우월성을 발견하는 장소로서 인식되었던 제주는 해방 이후 ‘항거’와 ‘절멸’ 그리고 ‘반공’으로 이어지는 유동적인 표상으로 상상되었다. 이는 다분히 중심의 필요에 의해 ‘발견’된 것이지만 그것이 지역을 소비하는 중심의 방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심상지리로서의 제주는 시대에 따라 움직이는 중심들의 변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나라만들기’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주체로서 청년의 역할이 강조되었던 때에 이르러서야 제주는 비로소 식민지 내부의 인식에서 탈피하여 ‘본국’의 이데올로기를 발견하는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민족적 항거의 표상으로서 이재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봉화?는 식민지적 무의식의 재확인이라는 식민지 로컬리티와의 단절을 꾀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인식하고 있다. 항거의 고장으로서의 제주 인식은 제주 4·3을 거치면서 또 다른 층위로 미끄러지는 데 그것은 바로 ‘절멸’의 공간이라는 인식이다. 반공국가 수립이라는 지배세력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에 ‘나라 만들기’의 또 다른 선택지를 내걸었던 ‘항거’는 철저히 응징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기의 제주 표상은 단일한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움직이는 표상의 연속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는 제주 4·3진상규명운동에 대한 찰나의 열정이 오랜 침묵 속에 갇혀버린 채 그 서막을 열었다. 60년대 이후 불기 시작한 ‘제주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제주의 특수성을 타자화함으로써 그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역설적 상황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제주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관광개발’ 정책의 추진과 더불어 ‘발견’되고 ‘주목’되었다. 개발과 전통의 보존이라는 과제 앞에서 지역의 지식인들은 지리적 변방이 중앙에 의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을 하나의 기회로 여겼다. 이는 국민국가의 일원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인 동시에 ‘고유성’을 승인받고자 하는 이중의 욕망이다.
6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제주를 ‘발견’하고 ‘상상’하려는 내부의 시도는 강인한 여성을 서사화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또한 60년 대 이후 확산된 이어도 담론은 제주의 내부로부터의 자생적 움직임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 외부적 발견은 국민국가 영토의 확장과 이에 대한 문학적 변용이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어도 전설은 국민국가라는 세계의 질서를 재구성하기 위한 질료로 ‘선택’되고 ‘발견’되었다. 이어도가 ‘보편적 지식체계’로 등극하게 된 데에는 문학을 포함한 대중매체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 보편의 발견은 제주도 내부가 아니라 외부적 시선에 의해 주도

목차

1. 서론 1
1. 1 문제제기 1
1. 2 연구사 검토 및 연구방법 5
2. 식민지-로컬리티의 발견과 ‘제주’의 심상지리 14
2. 1 제국의 시선과 근대의 호명 14
2. 2 식민지-로컬리티와 차별의 반복 25
2. 3 ‘문명’의 대면과 유동하는 경계 36
3. ‘항거’?‘절멸’?‘반공’, 움직이는 표상들-해방공간과 한국전쟁기의 ‘제주’ 44
3. 1. ‘항거(抗拒)’의 증명과 청년 영웅의 서사 45
3. 2. ‘절멸’의 공간과 반공의 보루 56
4. 지역의 ‘발견’과 전통의 ‘창조’-개발독재시대의 제주 67
4. 1. 전사(前史)-말의 복원과 강요된 침묵 67
4. 2. 개발의 파토스와 지역의 ‘발견’ 70
4. 3. 내부로부터의 ‘발견’ 79
(1) ‘소리’의 발견-‘협죽도’/‘스피커’라는 낯선 배치 79
(2) ‘해녀’와 ‘질병’의 사이 83
4. 4 전통의 창조와 재생산 93
(1) 이어도라는 ‘보편’ 93
(2) 유동하는 말에서 기록의 서사로 97
(3) 생산/재생산의 동력들 113
5. ‘기억하는 것’과 ‘기억되어야 하는 것’ 120
5. 1. ‘4?3’이라는 로컬리티 120
5. 2 무당으로서의 글쓰기-현기영과 현길언 126
5. 3 기록하는 자의 운명-오성찬 139
6. 결론 148
7. 보론-‘추상’의 언어와 ‘잉여’로서의 외부 151
<참고문헌> 166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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