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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김남은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徐承元
발행연도
2016
저작권
고려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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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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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일본의 외교정책은 보통국가론의 테두리 내에서 그 수단과 방법이 구체화되어 왔으며, 본 연구는 이러한 전후 일본의 외교정책결정자의 어프로치가 ‘미국과의 협조의 틀 안에서 자주외교의 희구’에 있으며, 그것을 ‘전후 아시아주의’로서 재고하고 있다. 즉 ‘전후 아시아주의’란 미국과의 협조를 중시하면서도, 아시아 내에서의 자기정체성을 추구하는 일본 외교정책결정자들의 희구를 뜻하며, ‘전후 아시아주의’가 표방하는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것은 ‘아시아의 일원’이면서 ‘서구 선진국의 일원’이기도 한 일본이 ‘가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후 아시아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자국을 ‘아시아의 일원으로 볼 것인가, 서구의 일원으로 볼 것인가’라는 양면성에 있으며, 이는 일본 외교가 내포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 아시아를 방위적 관점에서 선도하거나, 경제적 이익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아시아를 주장하는 동시에 서구를 주장하는 구분이 지닌 무리함’의 아포리아는 일본의 존재방식에 뿌리내린 근본적인 문제이다.
전후 일본 외교에서 중요한 과제는 미국의 압력이며, 이에 대한 일본의 선택이 ‘협조’인가 아니면 ‘자주’인가가 문제의 본질이다. 이 두 가지 경향성이 항상 정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 외교의 주체를 담당한 것은 ‘협조’ 노선이며 그 정신은 요시다 노선으로 이어져왔다. 이는 말하자면 ‘제2의 탈아 노선’이며, 일본 외교가 ‘소극적’이고 국제환경에 ‘순응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노선에서 탈피하고자 한 것이 반요시다 노선이며, 이들은 대미일변도에 대한 자주외교, 점령헌법에 대한 자주헌법, 경무장 노선에 대한 재군비 주장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요시다 노선이 미국과의 ‘협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해서,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탈피하고자 한 인식마저 결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즉 미국과의 틀 안에서 형식상의 자주라도 얻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협조’와 ‘자주’의 이중적 아이덴티티를 보여 왔으며, 이러한 경향성은 반요시다 노선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즉 반요시다 노선이 요시다 노선의 대미협조외교에 반대했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과의 ‘협조’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며, 다만 미국으로부터 다소 거리를 둔 자주외교를 모색하자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요컨대 요시다 노선과 반요시다 노선의 대립의 본질은 모순적이라기보다는 동일행위의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외교의 ‘미국과의 협조의 틀 안에서 자주외교의 희구’는 아시아에 대한 경제적 관여에서도 드러난다.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이후 일본은 ‘아시아 유일의 선진국’을 표방하며 독자적 지역 역할을 모색해 왔으며, 동남아시아에 대한 배상외교는 그것을 위한 첫 번째 실천이었다. 즉 일본이 경제력을 활용하여 동남아시아 지역과의 경제개발협력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는 측면에서 배상외교는 일본 외교의 ‘자주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자세는 미국의 대중봉쇄정책에 가담하고 있었던 시기에 민간 레벨에서의 중국접근을 장려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즉 일본은 ‘정경분리’적 사고에 입각한 점진적 관계강화를 모색함으로써 일본 외교가 반드시 대중봉쇄정책에 추종하는 것은 아님을 어필하려고 하였으며, 이는 말하자면 ‘제2의 입아 노선’이다.
그러나 요시다는 강화조약 조기실현을 위해서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를 포기했으며, 미일안보조약의 개정이 핵심과제였던 기시 또한 대중접근을 단절하였다. 사토도 오키나와 반환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일협조 노선을 전면화하여 대중접근보다는 대만에 대한 경제 원조를 강조하였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회복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협조’로 마무린 사례이며, 강화조약, 안보개정, 오키나와 반환 등 중국과의 관계단절로 인해 원하는 바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자주외교’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본 외교에서 ‘협조’와 ‘자주’가 상호보완적이며 동일행위의 표리를 이루는 사례는 자주 발견되며, 헌법 제9조에 대한 해석변경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베의 외교정책 또한 ‘국제협조주의’와 ‘적극적 평화주의’에 바탕을 둔 보통국가론의 확대와 발전이라는 점에서 상호 모순적이다. 이는 일본이 군사와 안보 등에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국가”의 기초를 놓는 ‘정체성의 정치’이며, 미일동맹 구조 내에서 일본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것이라는 발상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일본 외교는 ‘아시아인가, 서구인가’라고 하는 양자택일적으로 보이는 대립에 있어서, 오히려 이 둘을 연결하는 ‘적극적 공헌자’가 되는 것을 일본의 사명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속성을 지닌 ‘전후 아시아주의’는 일본 외교 노선에 잠재되어 있는 하나의 ‘경향성’이며, ‘자주’와 ‘협조’ 추구를 포괄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목차

제1장. 서론 1
제1절. 연구배경 및 목적 1
제2절. 선행연구 검토 및 문제제기 11
제3절. 논문의 구성 16
제2장. 근대 일본과 아시아주의의 실체 22
제1절. 지역의 사회적 구성 22
제2절. 문명론적 공간으로서의 아시아 26
제3절. 정치이데올로기로서의 아시아 35
제3장. 전후 일본의 보수지배체제와 외교 전략 69
제1절. ‘성단’에 의한 전전의 ‘전후화’ 70
제2절. 미국의 전후체제 개혁의 이중성과 보수지배체제의 강화 97
제3절. 강화와 안보를 둘러싼 미일교섭과 요시다의 전략 109
제4장. 전후 일본 외교의 이념적 대립과 아시아주의 133
제1절. 안전보장문제를 둘러싼 이념적 대립 133
1. ‘아시다 수정’의 ‘의도’ 134
2. 헌법해석을 둘러싼 논쟁 146
제2절. 미국의 대일압력에 대한 이념적 대립 159
1. 요시다 노선의 대미협조외교 159
2. 반요시다 노선의 대미자주외교 171
제5장. 전후 일본의 아시아 인식과 아시아주의 186
제1절. 요시다의 아시아 인식 186
제2절. 배상외교와 동남아시아 199
제3절. 정경분리와 대중접근 207
제6장. 결론 216
참고문헌 226
국문초록 240
일문초록 243
영문초록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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