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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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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최에스더 (명지대학교, 명지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이주현
발행연도
2017
저작권
명지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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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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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聘(1733-1799)의 생애와 작품 연구

최 에 스 더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지도교수 이 주 현

이 글은 揚州畵派 가운데 마지막 화가였던 羅聘의 생애를 정리하고 작품세계를 분석한 것이다. 18세기 揚州에서는 소금 전매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鹽商들이 새로운 사회 주도계층으로 부상해있었다. 揚州畵派 화가들은 鹽商들을 후원자로 삼았으며 明末淸初 개성주의의 맥을 잇는 문인화를 창작했다. 揚州의 이러한 분위기는 羅聘의 화풍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羅聘의 생애는 揚州에서 활동한 전기(1733-1770)와 揚州와 北京을 왕래하던 후기(1771-1799) 두 시기로 나누었으며, 작품은 畵目에 따라 花卉畵, 人物畵, 鬼趣圖, 山水畵 네 가지로 나누었다. 전기(1733-1770)는 羅聘의 예술의 토대가 세워진 시기였다. 그는 십대 후반의 나이에서부터 揚州에서 직업화가로 활동하였으며, 1756년에는 金農(1686-1764)을 스승으로 삼아 화풍을 성숙시켰다.
후기(1771-1799) 羅聘은 揚州와 北京을 왕래하며 작품을 판매했다. 揚州文化의 쇠락 이후 北京 文士들과의 교유는 그의 예술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이후 羅聘은 총 세 차례(1771-1773, 1779-1780, 1790-1798)에 걸쳐 揚州와 北京을 왕래했다. 주목되는 점은 제 3차 北京 체류기 동안 羅聘이 燕行에 참가한 조선 문인들과 교유했다는 점이다. 1790년 羅聘은 조선의 燕行使臣 趙秀三(1762-1849)과 처음으로 조우했으며 朴齊家(1750-1805)와 柳得恭(1748-1807)과도 깊은 친교를 맺었다. 이로 인해 羅聘의 화풍이 19세기 조선 문인들에게 전해졌다.
花卉畵, 人物畵, 鬼趣圖, 山水畵 네 가지 畵目 중 羅聘의 本領은 花卉畵였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四君子를 주로 그렸다. 각렬한 질감 표현과 색상을 강조하는 羅聘의 花卉畵는 20세기 海上畵派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羅聘은 人物畵 역시 다작하였다. 그는 친교의 의미로 지인들의 人物肖像畵를 그렸으며, 전통적인 종교도상을 중시하기보다 인간적이고 해학적인 묘사에 중점을 둔 道釋人物畵도 즐겨 그렸다. <鬼趣圖>는 羅聘의 회화작품 중 가장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는 귀신의 세계를 묘사하여 현실의 부조리함을 풍자했는데, 귀신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풍조는 宋代에서부터 시작된 전통이었다. 羅聘의 山水畵는 金農의 영향을 받은 은유적인 山水人物畵와 실제 경치를 소재로 한 山水畵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본 연구는 羅聘의 저서와 羅聘의 일생에 대해 평가한 저작들을 살펴보며 그의 행적을 고찰하였다. 또한 생애와 畵目을 바탕으로 그의 창작활동의 특징적 경향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 연구는 羅聘의 작품이 18세기 揚州와 北京의 문화동향을 반영하였음을 살펴보았으며, 羅聘과 조선 문인과의 문화교류를 정리한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목차

도판목차 ⅱ
표목차 ⅵ
국문초록 ⅶ
제 1 장 머리말 1
제 2 장 羅聘의 생애와 행적 4
제 1 절 전기: 揚州 시기 (1733-1770) 5
제 2 절 후기: 揚州?北京 왕래 시기 (1771-1799) 10
제 3 장 羅聘 작품의 화목별 고찰과 화풍의 특징 17
제 1 절 花卉畵 17
제 2 절 人物畵 29
제 3 절 鬼趣圖 37
제 4 절 山水畵 46
제 4 장 羅聘과 朝鮮文人의 교유 51
제 5 장 맺음말 57
참고문헌 59
도판 66
표 80
Abstract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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