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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박경남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조태섭
발행연도
2019
저작권
연세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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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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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흑요석 연구는 주로 화학적 분석을 통해 원산지를 판별하는 것이었다. 석기 자체에 대한 형태, 기술적 연구는 2000년대에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일련의 연구를 통해 흑요석은 주로 좀돌날 제작을 위해 효율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는 흑요석제 석기의 시·공간적 변화상을 규명하는 데 미흡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흑요석 원석의 획득에서부터 석기 제작과 폐기에 이르는 과정의 시간적 차이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방사성탄소연대값으로 본 구석기시대 흑요석은 약 25,000BP ~ 10,000BP 동안 이용되었다. 이 시기는 첫 번째 토양쐐기를 기준으로 이른 시기(흑요석 1기층)와 늦은 시기(흑요석 2기층)로 구분된다. 한편 시간적 차이성 이외에도 각 유적으로 반입된 흑요석의 양과 석기 형식, 제작 유무에 따라 석기군이 상이하다. 이와 같은 현상을 공간적 차이성으로 파악하였다.
분석 결과, 흑요석은 전 시기에 걸쳐 소비 정도가 매우 높았다고 판단된다. 부산물로서 몸돌류는 고갈된 상태이다. 특히 격지몸돌은 잔손질 석기 제작에 적합한 격지를 생산할 수 없는 상태로 폐기되었다. 격지도 몸체로 이용하기에 부적합한 부스러기가 대부분이다. 즉 최대한 석기를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최종 생산물인 좀돌날과 잔손질 석기는 흑요석 2기층에서 효율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판단된다. 흑요석 2기층에서는 좀돌날 제작을 가증시키기 위해 좀돌날몸돌의 몸체로 소형원석을 활용하였다. 이 좀돌날몸돌은 두 개의 때림면과 좀돌날면을 활용한 제작 방식이 적용되었다. 잔손질 석기는 일정한 범위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격지를 활용하여 긁개의 수량을 증가시켰다. 결과적으로 최종 생산물 제작과 관련된 효율성은 석기 수량에 반영되어 석기군 구성에도 시간적 차이성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처럼 석기군 구성의 차이는 층위라는 시간적 요소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흑요석은 최소한 남한 지역 내에서는 충분히 공급될 수 없는 돌감이었으므로 유적으로 반입된 흑요석의 양, 석기 형식, 제작 유무 등이 각 유적의 석기군을 상이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공간적 차이성을 규명하는 목적 하에 각 유적의 특징을 정리하였다.
이 글에서는 석기 형식의 유무에 따라 석기군을 세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그 결과, 단순한 석기군이 특징인 1유형에서 흑요석은 이미 제작, 완성된 형태로 반입되었으며 유적 내에서 석기 제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모든 형식이 확인되는 3유형은 비교적 많은 양의 흑요석이 반입되었으며 좀돌날과 잔손질 석기 제작을 통해 전체 석기군을 주도하는 양상이다. 결국 흑요석제 석기의 유형에 따른 이용 양상은 반입된 흑요석의 양과 관련된다.
앞선 분석 내용을 근거로 층위와 유적을 통해 나타나는 흑요석제 석기의 시·공간성을 고찰하였다. 흑요석은 좀돌날 제작에 특화된 돌감이다. 다만 동일한 형식의 석기를 제작하더라도 최종 생산물의 양은 동일하지 않다. 다시 말해 흑요석은 좀돌날기법이라는 동일한 조건에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돌감을 활용하는 기술적인 발전이 적용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유적별 석기 수량과 총 무게를 기준으로 공간적 차원을 이해하였을 때, 각 유적의 흑요석은 단발적으로 이용되었다는 공통점이 확인된다. 원석이 반입된 유적을 중심으로 대·소형의 다양한 석기군 유형이 혼재되어 있다. 다만 흑요석 2기층으로 갈수록 더욱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유형이 확인된다.
결국 단발적으로 이용된 흑요석을 토대로 구성된 석기군은 각 유적으로 반입된 돌감의 양과 형식에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희소한 돌감인 만큼 시간이 지나며 점차 제작 기술의 진전과 공간적 이용 범위의 확장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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