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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저자정보

송지영 (강원대학교, 강원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김세건
발행연도
2020
저작권
강원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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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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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의류 도매상가가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공간으로서 종족공간이 된 과정과 이민 경험을 통해 한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피기 위한 것이다. 다문화적인 공간인 아베쟈네다상가가 한인 사회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는 과정은 한인이 아르헨티나의 경제·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과정과 경제 성장을 이룬 동력을 보여준다. 아베쟈네다상가에서 종족공간이 생성되는 과정은 한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늘날 아르헨티나 한인 공동체는 종족성에 기반하지 않고 이민 경험과 다른 종족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어진 인식을 공유함으로써 형성됨을 알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한인의 종족관계를 통해 한인 사회에 공유된 종족담론의 함의와 이민 경험에서 기인한 ‘공유된 인식’을 통해 한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주목하고 이를 통해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의 특징을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으로 새롭게 이해하고자 시도했다.
아베쟈네다상가는 다음의 세 가지 필요에 의해 종족공간의 위상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50여 년의 이민 역사 동안 한인이 종사한 의류산업은 각 생산 단계별로 특정 종족이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 한인은 종족화된 의류산업에서 한인으로서의 종족성이 필요했다. 2006년 루이스 비알레 거리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은 정부, 공장주, 노동자 사이의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과 무관한 건물주였던 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아베쟈네다상가로 갈등을 옮겨왔다. 당시 한인은 이 문제를 종족문제로 인지하고 해결하고자 하였으며, 아베쟈네다상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종족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둘째, 한인은 아르헨티나에 종족성을 드러낼 근거가 필요했다. 지역 경찰과 한인회의 연락망으로 시작한 재아르헨티나한인상인연합회는 정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전달하며 한인 연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상연회는 사업을 진행할 때 공권력과 현지 기업을 적극적으로 동원한다. 이때 아베쟈네다상가는 한인 상인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셋째, 한인 상인의 변화된 경제지위에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종족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한인 사회에 형성됐다. 오랫동안 ‘한인촌’의 지위를 갖고 있던 백구지역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면서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새로운 ‘한인촌’으로서의 종족공간을 찾게 됐다. 사회를 대표하는 종족공간에 대한 필요가 커졌다. 한국의 경제 수준 및 인지도가 향상되면서 한인 상인에게 종족성은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드러낼 수 있는 특성 중 하나가 되었다.
한인 상인은 아베쟈네다상가를 통해 밖으로는 아르헨티나에 종족성을 드러내고 안으로는 한인 공동체를 만들었다. 한인 공동체 형성에는 각 구성원의 이민 경험과 다른 종족과의 관계를 통해 얻어진 종족담론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민 경험과 종족담론에 기반한 공통의 인식은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를 공동체로 만들었다.
1965년 1차 계약이민이 시작되고 50여 년의 이민 역사가 지나오는 동안 아르헨티나 한인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변화했다. 봉제하청업자였던 한인이 아베쟈네다상가의 도매생산자로 지위가 상승되면서 여러 종족과 거래관계, 이웃관계, 고용관계, 친구관계 등 다양한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맺게 되었다. 아베쟈네다상가에 아르헨티나에서 교육을 받고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상인과 변호사와 회계사 등의 종사자가 증가하면서 아르헨티나 사회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수 있게 되었다. 아베쟈네다상가에서 보이는 한인의 변화는 아르헨티나 사회와 다른 종족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인의 시각은 한인 사회에 종족담론의 형태로 존재했다. 한인은 종족담론을 통해 한인 스스로를 설명하고자 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에는 구성원끼리 공유된 특정한 ‘인식’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인식은 한인 개인의 이민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것으로서 한인 공동체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한인은 이민 경험과 종족관계를 통해 ‘분열’, ‘배신’, ‘불신’, ‘실망’, ‘텃세’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인식을 공유했다. 한인 사회에 공유된 인식은 소수자성과 차별을 경험하고 대응하면서 공동체성으로 강화되었다. 공유된 ‘인식’을 기반으로 했지만 모순적인 한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한인 공동체는 형성되었다. 이때 한인 공동체는 ‘문제없는 한인 사회’를 상정했다. 한인은 이를 위해서 한인 사회 내부의 문제를 공식화시키지 않으며 아르헨티나 사회가 인정한 ‘문제 있는 한인’과는 선을 그었다.
본 연구는 아르헨티나 한인의 경제 성장의 결과물인 아베쟈네다상가가 한인의 종족공간으로서 생성되는 과정과 아르헨티나 한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찰했다.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를 종족성이 아닌 이민 경험을 통해 생성되는 공동체로 규정함으로써, 아르헨티나 한인의 이민자 개인의 경험과 인식에 가치를 부여했다.

목차

Ⅰ. 서론 1
1. 연구 목적 1
2. 이론적 배경 및 선행연구 검토 3
1) 이주와 이민 3
2) 이주 공간 6
3) 종족경제와 이민자 경제 8
4) 아르헨티나 한인 연구 11
3. 연구지역 및 연구대상 개관 14
1) 공간적 배경 14
(1) 아르헨티나 개관 14
(2) 부에노스아이레스시 개관 18
(3) 아베쟈네다상가 개관 21
2)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 25
(1) 한인 인구수의 변화와 특성 26
(2) 한인 조직 현황 28
4. 연구의 과정 31
5. 논문의 구성 34
Ⅱ 아르헨티나 이민정책의 변화와 한인 이민 36
1. 아르헨티나 이민정책의 기조와 이민 양상 37
1) 이민정책의 기조: 유럽인 이민을 통한 국가 세우기 38
2) 이민 지형의 변화 40
(1) 유럽인 중심의 이민: 1870-1913년 40
(2) 이민 침체기: 1914-1946년 41
(3) 이민의 다변화: 1947년 이후 41
2. 한국의 이민정책과 아르헨티나 이민 43
1) 집단 이민의 시대 43
2) 1차 아르헨티나 계약이민, 라마르케 영농이민단 46
(1) 민간에서 정부로, 1차 계약이민의 준비 46
(2) 1차계약이민단의 정착 48
3) 아르헨티나 계약이민의 전개 53
(1) 농장 구입 및 지원을 통한 농업이민 추진 53
(2) 수산회사 중심의 어업이민 57
(3) 기업 이민 60
3. 개별이민의 시대: 초청이민과 투자이민 62
1) 초청이민을 통한 인적 자본 유입 63
2) 투자 이민을 통한 한인 사회 자본 유입 64
Ⅲ. 아르헨티나의 경제 변화와 한인 경제의 성장 68
1. 아르헨티나의 경제 변화와 특징 69
1) 수출경제를 통한 경제 성장: 19세기 말-20세기 초 69
2) 허울뿐이었던 수출대체산업화 정책: 20세기 초-20세기 중반 70
3)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 73
2. 한인 상인의 경제지위 변화: 하청업자에서 도매생산자로 74
1) 아르헨티나 의류산업으로의 진입 75
2)소매상인과 도매생산자로서의 한인 78
3. 한인 상인의 적응전략 82
1) 종족집단의 활용 82
(1) 기술 전수를 통한 생산네트워크 구축 83
(2)한인 간 거래를 통한 도매시장 확장 85
(3)종족 금융거래: 계·환전·송금 86
①계 86
②환전: 페소화에서 미국 달러화로 89
③한국으로의 송금 90
(4) 한인네트워크의 결성과 운용 92
2) 가족 성원의 노동자원화: 기여 가족 종사자의 탄생 95
(1) 생산비 절감의 수단으로서의 가족 95
(2) 신뢰할 수 있는 노동자원으로서의 가족 98
3) 불안정한 환경에서 소수자로서의 전략 99
(1) 현금 거래와 부동산 투자 99
(2) 단체 채팅방을 통한 위기 정보의 공유 102
(3) 소수자 생존법으로서의 세금 회피 104
Ⅳ 한인들의 종족공간: 아베쟈네다상가의 형성과 변화 109
1. 아베쟈네다상가의 형성과 배경 110
1) 온세상가로부터의 이동 110
(1) 내수시장 중심의 의류산업 112
(2) 교통 환경의 변화 113
(3) 부동산 시장의 변화 115
(4) 의류 전문상가로의 성장 가능성 118
2) ‘백구지역’으로부터의 이동 119
(1) 주거지 개별화와 다양화 119
(2) 백구지역 주변부의 슬럼화 125
2. 종족공간의 생성 127
1) 종족공간화의 시작: 상연회와 루이스 비알레 화재사건 128
2) 종족공간의 공표: 축제의 개최 130
3. 종족집단 대표로서의 ‘상연회’ 136
1) 아베쟈네다상가의 상징성 부여 138
2) 공권력 동원과 연대: 만떼로 단속과 방범 140
3) 사업의 확장: 김치냉장고와 회원카드 144
Ⅴ 종족관계와 이민 경험을 통한 한인 공동체의 형성 146
1. 아르헨티나인에 대한 인식의 재구성 146
1) 풍요로운 아르헨티나와 친절한 아르헨티나인 147
2) 아르헨티나인에 대한 재평가: 친절에서 ‘텃세부리기’로 151
3) 풍요로움에 대한 시선의 변화: ‘게으른 아르헨티나인’ 155
2. 종족관계에 따른 종족 담론의 변화 159
1) 유대인: 원청업자에서 경쟁자로 160
(1) 계산적인 유대인과 게으른 유대인 161
(2) 음모론의 가해자로서의 유대인 164
(3) 비교 기제로서의 유대인: 한인 사회의 편중된 경제활동 비판 166
2) 볼리비아인: 한인의 초상 167
(1) 위협적인 존재가 된 볼리비아인 168
(2)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의 틀 173
(3) 비교 기제로서의 볼리비아인: 정이 많고 성실한 한인 강조 174
3) 일본인·중국인: 한인 이미지 재현 기제와 자기반성의 도구 176
4) 미국의 한인: 1등 국가와 2등 교민 179
3. 이민 경험과 한인 공동체 182
1) 공동체의 시작: 이민 경험을 통한 인식의 공유 183
(1)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184
(2) ‘정’ 많은 개인, 단합하지 못하는 한인 사회 186
(3) 불신과 음모 사회 187
2) 공동체성의 강화: 소수자성과 차별의 경험과 대응 189
(1) 한인이라는 낙인에서 소수자성으로 189
(2) 차별의 경험과 대응 191
3) 가치의 공유와 공동체성 유지 193
VI. 결론 195
[참고문헌] 198
표 목 차
<표 1-1> 아르헨티나 23개 주의 면적 및 2010년 인구 현황 17
<표 1-2> 부에노스아이레스시 코무나 별 인구 수 및 면적 21
<표 1-3> 한국의 아르헨티나 이민 출국자 26
<표 1-4> 중남미지역 및 아르헨티나 재외한인수 변화 27
<표 1-5> 지역별, 거주자격별 아르헨티나 한인 현황 28
<표 1-6> 아르헨티나 종교기관 현황 28
<표 1-7> 아르헨티나 한인단체 현황 29
<표 2-1> 아르헨티나 총인구수 및 비인접국, 인접국 출신자수(1869-2010) 39
<표 2-2> 야타마우카 농장 사업 추진 경과 55
<표 2-3> 한국 정부에 의한 아르헨티나 농업 계약이민 56
<표 2-4> ㈜한성기업이 제시한 “이주협정의 주요 내용” 전문 59
<표 2-5> 1985년 이민 개발 실적 61
<표 3-1> 아르헨티나 화폐 개혁 73
<표 4-1> 온세상가와 아베쟈네다상가 한인 점포 수 비교 111
<표 4-2>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전체 수출액 중 의류 수출 비율과 상위 3항목 112
<표 4-3> 시기별 한인 집단 거주지 120
<표 4-4> 백구지역 한인업소 비교표 122
<표 4-5> 201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종족 기념행사(Buenos Aires Celebra) 134
<표 4-6> 상연회의 주요 활동 136
<표 4-7> 상연회 회원서비스 가입 현황 145
<표 5-1> 공공요금 인상률 156
<표 5-2> 2010년 아르헨티나 인구 중 외국 출생자 수 (단위: 명) 159
<표 5-2> 의류산업에서 한인의 종족관계 183
그림 목 차
<그림 1-1> 아르헨티나의 23개 주와 자치시 17
<그림 1-2> 부에노스아이레스의 15개의 코무나와 48개의 바리오 20
<그림 1-3> 아베쟈네다상가 전도 23
<그림 1-4> 아베쟈네다상가 쿠엔카 400번대 점포들 24
<그림 1-5> 3엘레판테 갈레리아 24
<그림 2-1> Caras y Caretas 2009년 9월호 표지 36
<그림 2-2> 이민 정착지 답사 후 한국 외무부에 보고한 현장 지도 48
<그림 2-3> 이민단이 세운 흙벽돌집과 리오네그로 주정부가 제공했던 트랙터 51
<그림 2-4> 1984년 이민비자 서류 63
<그림 3-1> 온세상가 79
<그림 4-1> 온세상가의 교통입지 111
<그림 4-2> 온세상가와 아베쟈네다상가 상권의 점포 분포 비교 114
<그림 4-3> 백구지역의 범위 122
<그림 4-4> Villa 1-11-14 126
<그림 4-5> 사고가 난 루이스 비알레 공장의 위치 128
<그림 4-6> 2016년 ‘한인의 날’ 광고 132
<그림 4-7> 축제 개최지 135
<그림 4-8> 만떼로 시위 140
<그림 4-9> 만떼로의 물건을 압수하고 있는 경찰 143
<그림 5-1> 1960-2017년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1인당 GDP 153
<그림 5-2> 백구지역에 집중된 한인들의 모습을 그린 신문 삽화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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