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백석과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유년 체험의 시적 형상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에 고향 상실을 경험한 백석과 윤동주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훼손되지 않은 유년 세계를 구현하고 과거의 충만했던 시간을 재현하는 가운데 삶의 지향점을 모색해 가고자 했다. 이때 두 시인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유년화자와 성년화자를 내세워 유년 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인데 이들 시에 나타난 유년 체험은, 시적 화자가 진정한 삶의 모습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은 백석과 윤동주의 시에 형상화된 유년 체험이 각 시인이 구축한 독자적인 시 세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전제하고, 이들 시에 나타난 유년 체험의 형상화 양상을 시 세계 전반에 걸쳐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백석과 윤동주 시에 나타난 유년 체험이란 화자 혹은 시 속 인물이 유년 시절에 겪은 경험을 의미한다. 유년 체험이 형상화된 이들 시에는 시적 화자나 등장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거나 유년의 감각을 떠올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때 ‘기억’을 통해 과거를 형상화하는 방식은 백석 시에 중점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며 백석 시는 유년 기억이 복원되고 재구성되는 방식을 통해 원형의 공간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백석 시에서 유년의 기억은 해방기에 이르는 시의 전개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회복해가는 계기로 나타난다. 반면 윤동주의 시에는 유년의 ‘정서’가 부각되는데 그의 시에서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유년의 정서를 통해 고향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도덕적 양심, 부끄러움, 죄의식, 슬픔 등의 정서는 이 같은 유년의 평화를 지향하고자 한 시인의 갈등과 고뇌에서 비롯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동주 시에 발현되는 유년의 정서는 윤리적·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청렴하고 순수한 자아를 완성해가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석과 윤동주의 시 세계에 나타나는 유년 체험은 화자의 유형에 따라 독특하게 구현된다. 먼저 백석의 시 세계는 풍요로운 삶을 재현하는 유년의 화자와 상실된 고향을 떠올리는 성인의 화자의 모습으로 강조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복원하는 유년화자는 어린 아이의 감각을 통해 원시적 공동체의 삶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며 유년의 고향을 회상하며 반추하는 성년의 화자는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떠올림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백석 시에 나타나는 유년 기억은 시인 백석이 유년의 삶을 통해 자기 본원을 탐구해 가는 시적 태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윤동주의 시 세계는 동심을 재현하는 유년화자와 시대적 고뇌와 갈등을 드러내는 성인의 화자에 의해 구현된다. 유년 정서를 재현하는 유년의 화자는 동심적 세계관을 통해 낭만적 세계를 동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성년의 화자는 유년의 정서를 환기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윤동주 시에서 유년과 성년 화자의 시선으로 형상화되는 유년 정서는 삶에 대한 실천적 의지를 완성해가는 시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백석과 윤동주의 시에서 유년과 성년화자의 유형은 이들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함으로써 각 시인이 구현하는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지닌다.
이처럼 백석과 윤동주의 시에 형상화된 유년 체험은 순수하고 행복했던 유년의 시간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때 시적 화자는 유년의 고향을 끊임없이 떠올림으로써 과거 충만했던 삶에 대한 시인의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이들 시의 유년 체험은 고향 상실에 대한 아픔을 회복하는 데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근원적 바탕을 시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시인이 현실 극복의 의지를 모색해가는 방법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들 작품에 형상화된 유년 체험은 유년의 삶에 대한 지향을 통해 내면적 성숙에 도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백석과 윤동주 두 시인의 유년 체험이 서로 다르게 형상화되는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이들 시인의 전체 시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