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위논문
저자정보

장윤선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도교수
유용태
발행연도
2022
저작권
서울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이용수1

표지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상해 공공조계의 중국인이, 1919년에서 1937년 기간에 자신들의 권리를 자각하여 시정에 참여하고 권익을 신장해 가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그 속에서 이민도시 상해로 모여든 중국인이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단체를 결성하고 공적 활동에 참여하며, 상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양상에 유의하였다.
공공조계에서 중국인의 시정참여 요구는 1919년 4월의 증세 결정에 항의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때는 총상회와 상총연회를 비롯한 상인단체가 중심이 되어 화인동사의 참정과 장정의 개정을 요구했으나, 화인고문회의 성립에 그쳤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국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공부국과의 교섭기구로 납세화인회가 조직되었다.
국민혁명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5.30 사건이 일어나자 상해의 조계는 중국인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상총연회에서 왕한량, 왕연송 등이 국민당에 가입했고, 참정운동에 왕정정을 비롯한 정치가 및 정치세력이 합세했다. 공상학연합회와 총상회는 외국인만으로 구성된 동사회와 납세인회를 중국인과 공동으로 조직할 것을 주장했다. 1926년 4월에 조계당국이 화인동사 3명에 의한 참정을 결정했지만, 중국인은 납세액에 비례하는 동사의 의석수를 요구했다.
북벌군이 활약하면서 상해의 안전이 위협받자, 공상학연합회는 시민공회를 조직하여 자치시를 건립하고자 했다. 상해의 중국인에게 상해라는 도시 공간에 대한 소속감, 책임감, 주인의식 등의 지역정체성이 발현된 것이다. 이것은 공공조계 중국인의 참정운동 경험을 살린 것으로 이후 납세화인회의 개편과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1928년부터 중국인의 시정참여가 본격화되었다. 화인동사에 선출된 사람은 대체로 고등교육을 받고 외교사무나 국제업무 경험이 있는 공상계 인물이었다. 1930년대에 화인위원에 선출된 사람 중에는 공상계 인물 외에 아동교육가, 방직업자, 국민당원 등도 포함되었다. 공부국은 교육, 의료, 문화 각 방면의 전문가를 화인위원으로 초빙했는데, 1930년대에 그 수가 30여 명에 이르렀다.
조계시정에 참여한 중국인 중에는 정부기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거나, 정부관원과 자주 접촉하며 국민당 정부와 친밀하거나 원만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조계 중국인 사회의 핵심인물이었던 우흡경과 왕효뢰는 국민당 정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중국인은 이런 사람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더 유리하다고 여겼고, 공부국도 중국 정부를 의식하여 이런 사람을 선호했다.
공부국의 행정력은 전체 상해사회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중국인의 시정참여는 상해인 전체를 대변하는 일이기도 했다. 중국인의 참정이 실현되면서 중국인도 공원 이용이 가능해졌고, 중문판 공문도 발간되었으며, 교육과 의료 행정에 중국인도 포함되었다. 공공요금 인상문제로 공부국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상층의 중국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상해의 공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상해인으로서의 결속을 다져나갔다.
공부국의 중국인 직원 즉, 화원의 채용도 점차 증가했다. 이들은 서양인 직원과의 동등한 대우와 권익을 보장받기 위해 화원총회를 결성했다. 화원총회는 공부국과의 교섭을 통해 화원도 시정세 면제, 퇴직연금제도, 신년보너스, 장단기휴가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시정담당자로서의 실무지식과 자질 함양을 위한 활동을 공유하며, 상해시 전체 시정을 염두에 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화원의 이런 활동은 직장을 중심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주체적인 개인으로 성장해 가는 상해인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본 연구가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인의 시정참여와 권익신장 활동을 통해 자본가, 지역 명망가 등 상층의 인사뿐 아니라 공부국의 화원과 일반인도 사회적 관계망과 여론을 통해 상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결속해 갔음을 밝혔다. 둘째, 중국인이 모방과 학습을 넘어 조계권력과 공존하며 경쟁하는 단계로 나아갔음을 드러냈다. 납세화인회와 화원총회의 활동이 보여주듯, 중국인은 구미 열강의 논리로 공부국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공부국도 중국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고, 서양인 직원들도 공부국의 달라진 분위기를 의식했다. 셋째, 조계에서의 식민성이 점차 해소되고, 중국인의 근대 시민으로의 성장이 촉진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조계는 중국인에게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식민성의 공간이었고, 화원 역시 급여와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 있었다. 중국인의 참정이 실현되면서 이런 상황은 개선되었고, 그 과정에서 중국인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목차

Ⅰ. 서론 1
Ⅱ. 公共租界의 운영 체계와 중국인의 소외 11
1. 工部局의 운영 규정과 지배구조 11
2. 중국인 인구의 증가와 운영상의 소외 24
Ⅲ. 市政參與의 요구와 華人董事의 출현 41
1. 市政參與 요구와 華人顧問會 41
1) 市政參與의 요구와 納稅華人會의 성립 41
2) 華人顧問會와 중국인의 시민권 51
2. 市政參與 요구의 진전과 華人董事의 출현 65
1) 5.30 사건과 市政參與 요구의 진전 65
2) 자치시 건립 운동과 華人董事의 출현 74
Ⅳ. 市政參與 활동과 市政改善의 부분적 실현 88
1. 納稅華人會에 대한 남경정부의 후원 88
2. 華人董事와 華人委員의 市政參與 활동 100
1) 華人董事와 華人委員의 인물 구성 100
2) 華人董事와 華人委員의 市政參與 111
3. 市政改善의 요구와 부분적 실현 129
1) 공원 이용과 中文 공문서 발행 129
2) 학교 교육 기회의 확대 137
3) 공공요금 인상율의 조정 146
Ⅴ. 중국인 직원의 단체 결성과 권익신장 157
1. 華員總會의 성립과 운영 157
2. 중국인 직원의 권익신장 171
Ⅵ. 결론 185
참고문헌 192
부록 202
Abstract 209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