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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43
발행연도
2006.9
수록면
39 - 81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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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기 동아시아 도성에 있어서 坊의 형태는 동서장방형이나 정방형 중의 어느 한 형태로 다양하게 설정되었고 그 규모 또한 각기 다르게 설정되었다. 반면 방의 분할방식에 있어서는 唐 長安城을 제외한 고구려 長安城과 신라 왕경, 北魏 洛陽城, 일본 藤原京에 田자형의 4분할방식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성구획의 측도기준 또한 고구려 장안성을 비롯한 신라 왕경과 일본 등원경에는 그 地割의 기준으로서 고구려척이 사용되었다. 나아가 이들 도성의 도로는 각각 大路, 中路, 小路로 유형화되었고 도로의 규모 또한 일정한 유사성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신라 왕경과 등원경의 경우 주작대로가 실제적인 중심대로로서 기능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주작대로로 기능한 대로가 없었던 고구려 장안성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북위 낙양성에도 나타나고 있어, 이들 도성은 당 장안성과 확연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가로구획 방식에 있어서도 당 장안성과 여타 도성 간의 일정한 차이점이 확인된다. 북위 낙양성을 비롯한 고구려 장안성, 신라 왕경, 등원경은 도로폭을 포함하여 坊을 구획함으로써 도로의 너비에 따라 방의 실제 면적이 달라졌던 것이다.
주지하듯이 고구려 장안성에는 정연한 가로구획방식 외에도 羅城과 北闕이 마련되는 등 새로운 도성적 요소가 출현하는데, 이는 중국에서도 북위 낙양성에서 처음으로 완성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북위 낙양성의 도성제는 당 장안성에 앞서 고구려 장안성에 먼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고구려 장안성은 고구려척을 지할의 기본 단위로 사용하는 등 고구려만의 독자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가로구획방식은 신라 왕경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신라 왕경에 있어서의 가로구획의 布置시기는 연구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지만, 통일기 이전에 적어도 일차적인 도성정비는 마쳤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라 왕경의 가로구획 방식은 중국 도성과의 관련성을 고려하기 앞서 고구려 장안성과의 관련성을 먼저 검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등원경 또한 어떠한 경우든 한반도 도성의 연계 없이 중국 도성과의 직접적인 관련을 고려하기는 힘든 것으로 생각된다. 등원경을 조영한 때에는 북위 낙양성이 폐기된지 이미 160여년이 지났을 시기이고, 마찬가지로 견당사의 파견이 天智 8년(669)부터 大寶 2년(702)까지 30여 년에 걸쳐 중단되었기 때문에 당 장안성의 직접적인 영향도 고려하기 힘들다. 따라서 가로구획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북위 낙양성-고구려 장안성-신라 왕경-일본 등원경으로 이어지는 도성의 계보관계를 상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고구려척의 사용과 도로체계의 유형화, 그리고 도로 규모의 유사성 등에 있어서 고구려 장안성과 신라 왕경, 일본 등 원경은 보다 구체적인 연관성을 나타내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坊의 형태와 규모
Ⅲ. 坊의 분할방식과 地割尺
Ⅳ. 도로와 배수로
Ⅴ. 가로구획과 택지분할방식의 특징과 연관성
Ⅵ.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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