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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28집 제1호
발행연도
1994.11
수록면
237 - 256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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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박지원과 박규수의 사론(士論)을 비교한 것이다. 박지원은 실학파중에서도 북학파의 중심인물이며, 박규수는 실학과 개화사상의 교량역할을 한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박지원(1737-1805)과 박규수(1807-1876)는 조손(祖孫) 관계라는 혈연적인 의미외에도 박지원의 사상이 박규수를 통하여 김옥균동의 초기 개화파에게 전수되었다는 점에서 그 사상적 연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士)는 조선조에 있어서 신분적인 특권계급이었으며 또한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본 논문은 박지원과 박규수의 사론(士論)에 있어서 두 가지의 측면을 고찰하였다. 첫째, 양자(兩者)는 당시 조선조에서의 사(士)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둘째, 그들이 조선조의 지도자 또는 지식계층으로서의 사(士)에게 요구한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에 대한 고찰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사(士)에 대한 인식의 측면에 관해서 보면, 양자(兩者) 모두 사(士)를 조선에 있어서의 지도자로 인식하였다. 둘째, 그러면서도 사(士)는 보편적 인간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세째, 여전히 사(士)에게는 유교적인 도덕성이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그러나 박지원의 사(士)는 농공상(農工商)과 그 지위를 달리하고 있다. 사(士)는 농공상의 위에 위치하며 농공상의 업(業)을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 대하여 박규수에게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적 차별은 나타나 있지 않고 사(士)의 업(業)으로서 농공상을 인정하였다.
다음으로 사(士)의 역할의 측면에서 본다면 양자(兩者) 모두 사(士)가 도덕성을 지니고 조선의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러나 박지원의 경우 사(士)는 실용성을 추구하는 통치자이며 따라서 종래 천업(賤業)으로 인식되었던 상인(商人)이 되는 것조차 꺼리지 않는다. 박규수는 사(士)에게 박지원처럼 실용과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면서 한편으로 경세치용학파의 주된 관심이었던 제도개혁의 문제도 사(士)가 담당해야 할 과제로서 인식하고 있다.

목차

【논문요약】
Ⅰ. 서론
Ⅱ. 사상적 同異의 전제요인
Ⅲ. 士論의 比較
Ⅳ.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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