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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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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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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한국정치학회보 제33집 제1호
발행연도
1999.7
수록면
89 - 110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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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한국의 지역 감정의 중요 부분을 이루고 있는 호남 phobia와 鄭汝立의 역모 사건(己丑獄事)이 어떠한 함수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밝혀 보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2] 정여립은 전주 태생의 수재로서 젊은 나이에 조정에 진출하여 홍문관 수찬의 벼슬에 올랐으나 당쟁의 와중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향하여 금산사 부근에서 讖緯와 금산사의 미륵 사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대를 開創하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의 행위가 誣獄이었느냐 아니면 실제 역모였느냐의 역사학적 논쟁은 그의 사상을 주로 천착하고자 하는 본 논문의 핵심이 아니지만, 이 글은 그에게 逆心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3] 정여립의 사상적 핵심은 세습적 왕권을 부인하고 천하는 각기 능력 있는 자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이는 서구적 개념에서 본다면 초기 공화주의적 성격을 띄우고 있으며 동양 사상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王思想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4] 기축옥사(1589)를 통하여 호남은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이로 인해 호남인들의 자괴감이 더욱 내밀화되었다. 이 사건으로 호남은 逆鄕으로 지목받아 그후 임진왜란의 공신 책록에 호남인이 배제되는 결과를 빚었고, 이때로부터 호남 phobia는 더욱 심화되었다.

목차

논문요약
Ⅰ. 머리말
Ⅱ. 정여립의 생애
Ⅲ. 정여립의 생각
Ⅳ. 기축옥사의 전개
Ⅴ.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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