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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양명
저널정보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속학 韓國民俗學 第42輯
발행연도
2005.12
수록면
297 - 338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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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 조면호가 남긴 〈삭전가〉와 〈삭전해〉는 19세기의 고을축제와 줄당기기의 존재 양상 및 성격을 파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이다. 이 자료를 통해 고을을 배경으로 벌어진 축제와 그 중심적 연행인 줄당기기의 존재양상 및 성격, 그리고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1858년, 의성현의 읍치에서 벌어진 고을축제는 제석의 나례로부터 입춘제를 거쳐 대보름 다음날의 줄당기기까지 이어졌으며, 특히 줄당기기는 축제의 절정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석의 나례는 공리가 주관하였고 화룡제와 곡점을 위주로 한 입춘제는 호장이 여러 아전들을 거느리고 거행하였다. 한편 줄당기기는 암줄인 남부와 숫줄인 북부로 편을 갈라 진행하였다. 읍치의 밖에서 만든 줄을 운반하는 과정은 노래와 춤, 그리고 풍물이 함께하는 길놀이로서 ‘거리의 축제’에 다름 아니었고 이런 양상은 다른 길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인 줄당기기는 해가 진 뒤에 능파정에서 벌어졌다. 줄이 도착하면 먼저 줄고사를 올리고 각종 앞놀이를 펼쳤다. 줄당기기는 앞놀이를 마치고 시작하였는데 모두 놀이에 몰입하여 주위의 눈길이나 일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놀이에 빠져들었다.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편은 가무를 즐기며 자축하였고 뒤이어 관아 근처의 봉생루에서, 현령이 이긴 편에게 돈과 비단을 내리는 시상식이 있었다.
1858년의 고을축제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축제의 의미는 고을의 안과태평을 주술종 교적으로 예측하고 기원하는 데 있었지만, 축제에 관여한 주체들은 각기 상이한 입장을 갖고 있었고, 이 입장을 바탕으로 고을 축제의 문화적 의미가 실현되었다. 지방관은 고을축제를 통해서 민심을 위무함으로써 민정을 안정시키려 하였고, 향리들은 그들과 고을민의 우호적 연대를 확인시키는 한편 그들이 상위에서 고을민을 대표하는 존재임을 납득시키려 하였다. 한편 고을민은, 시공간의 속성과 의미의 변화, 동관의식을 바탕으로 한 축제적 연대, 일상적 차별의 약화와 무화, 언어의 축제화와 축제적 웃음 등을 통해 그들의 축제욕구를 충족하는 한편 지배적 가치들을 상대화함으로써 지방관이나 향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현실의 지배관계를 부정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목차

[국문초록]
1. 고을축제와 줄당기기에 대한 관심과 문제
2. 索戰歌와 索戰解의 내용
3. 1858년, 의성현 고을축제의 내용과 성격
4. 고을축제의 문화적 의미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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