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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어문학회 동악어문학 한국어문학연구 제48집
발행연도
2007.2
수록면
7 - 22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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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하여 불교를 배척하게 되니, 승려들의 존재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종교로서의 힘을 유지했던 것은 이 어려운 여건에도 굴함이 없이 당당히 교리를 수호한 호법정신의 위대함이었다.
이러한 호법의 자세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준 분 들이 있다면 이 또한 당시 사대부이면서 시인으로 자부할 만한 문학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시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너와 나의 격의 없는 교분으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여 상대방의 이념을 너그러이 수용하는 참다운 지식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중기의 시인 東岳 李安訥(1571~1637)과 후기의 秋史 金正喜(1786~1856)의 艸衣禪師와의 수창시를 살펴 그들의 교유와 시 양상을 알아보았다. 먼저 17세기 초 시단을 주름잡았던 이안눌의 경우, 지방관을 역임하는 동안 雲谷?徽禪師와 시교유를 하였다. 비록 방외자라고 할 수 있는 선사와 지방관이라는 전혀 상반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이들은 시적 교유를 통해 ‘峨洋之契’를 맺었던바, 이들의 교유는 17세기 문학사의 한 국면을 차지한다. 그리고 유명한 秋史와 초의선사의 만남은 19세기 초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들은 그야말로 모두 방외적 존재로서 그들의 시적 교유는 方外의 志趣 그 자체였다.
儒者와 승려의 교유는 조선후기 사회에서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교유는 僧俗의 차원을 넘어 불교와 문학이 만나고 승화되는 유력한 예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東岳과 雲谷의 수답시
Ⅱ. 秋史와 艸衣의 교유
Ⅲ. 마무리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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