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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49
발행연도
2008.3
수록면
147 - 188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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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簡에 내재한 歷史像을 밝히기 위해서는 出土 情報의 확보와 이에 대한 검토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만 月城垓子 木簡은 출토된 지 20년이 지나서야 출토위치가 분명하게 밝혀졌고 그나마 이를 토대로 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 글은 보고자가 정리했던 출토 유구의 위치와 층위를 토대로 共伴遺物과의 관계 속에서 목간의 연대를 살펴보았으며, 나아가 목간의 시대를 전후한 해자와 月城 周邊의 景觀 변화를 추구하였다.
먼저 유구(해자) 자체와 연대추정의 표지가 될 수 있는 共伴遺物의 비교를 통하여 月城垓子 목간의 연대가 5세기 후반에서 7세기 중후반에 해당하며, 그 중심연대를 6세기 중반에서 7세기 전반으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목간의 출토상황에 대한 보고서의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였다. 이어서 최근 알려진 4호 해자의 변천을 주목하여 해자 주변이 어떤 의미에서 변화하고 정비되었는가를 밝혔다. 文武王 19년(679)의 宮闕 重修와 東宮의 창건에 이어지는 內外 諸門의 額號를 정하였던 것에 주목하여 宮城인 月城과 東宮의 出入施設로서 해자의 역할 변화를 설명하였다. 궁궐 내외의 문과 출입시설들은 동궁의 창건과 더불어 일괄적으로 정비되었는데, 이때 확대된 宮闕地區에 속한 복원 石築垓子와 3·4·5호 해자가 權威的 造景 機能의 石築垓子로 재조성되었다. 그러나 官衙地區에 속하며 월성의 출입시설과 이렇다 할 관련이 없던 1·2호 해자는 매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문헌자료와 현재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의 성과를 고려해 월성의 정문인 北門, 東門과 西門의 위치 및 출입상황 등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나아가 전체적으로 궁성의 범위가 확대되어가는 추세를 분석하여 월성의 북문과 庫門外庭을 기준으로 동쪽은 月池와 東宮·南宮으로 대표되는 궁궐지구, 서쪽은 관아지구로 구획되었다고 파악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月城 周邊의 景觀 變化는 문무왕대에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적어도 6세기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眞興王代 皇龍寺 창건으로 귀결되는 왕궁의 확장 노력과 월성해자 목간의 출토상황·묵서 내용에서 월성외곽의 궁궐과 관아지구 형성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월성해자 목간의 출토위치
Ⅲ. 共伴遺物과 목간의 年代
Ⅳ. 목간의 폐기환경과 사용처
Ⅴ. 月城 周邊의 景觀 변화
Ⅵ.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抄?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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