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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52號
발행연도
2006.12
수록면
223 - 264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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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寬은 字가 元綱(元剛)이며 號는 小塘으로, 1783년에서 1838년까지 생존한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면서 직업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알려지는데, 특히 초상화에 뛰어나 1837년에 훼손된 太祖 어진을 다시 그려내어 등산첨사에 오른 것으로 전한다. 이와 같은 이재관의 생애에 관한 간략한 내용이 그의 절친한 교우였던 趙熙龍(1789-1866?)의 『壺山外記(史)』에 기록된 내용을 통하여 알려졌다.
조희룡은 秋史 金正喜(1786-1857) 문하로 이재관의 〈天池石壁圖〉에는 김정희가 쓴 제문이 전한다. 또한 1827년에는 이재관이 김정희의 추천으로 李賢輔(1467-1555) 影幀을 改摹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 사이에도 상당한 교유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壺山外記(史)』에 의하면 이재관은 欣然館이라는 자신의 화실을 가지고 전문적인 직업화가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말년기에 종종 방외화윈으로 차출되어 활동하였고, 이 시기 자연스럽게 많은 화원화가들과 교유하며 그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실력과 안목을 인정받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재관은 산수화, 인물화 , 초상화, 화조영모화 등 다양한 화목에 걸쳐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이재관의 작품 중 현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은 〈米?拜石圖>(1817)이다. 〈米?拜石圖〉는 세필을 사용하여 윤곽선 위주로 조심스럽게 그려낸 흔적이 뚜렷한데, 이 작품을 기준으로 1817년을 전후한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을 전기로 분류하였다. 한편 傳 沈師正(1707-1769)의 〈山居圖〉와 유사한 화면구성을 보여주는 이재관의 〈山居圖>는 전기의 양상과 화풍을 잘 보여주며, 이 과정에서 『芥子園畵傳』을 비롯한 화보를 통한 수련도 함께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중기부터는 김정희의 영향 아래 남종화에 대한 진전된 이해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중기에서 후기로 접어들면서는 점차 자기만의 회풍과 양식을 형성해가며 〈午睡圖〉를 비롯한 이 재관의 산정일장도는 이러한 과도기적인 경향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들은 조밀한 구도에 경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던 전기의 방법에서 탈피하여, 바위나 소나무로 이루어진 간단한 산수를 배경으로 근경을 부각시켜 그려내어 후기 화풍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드러내준다.
1837년에 그려진 〈山水畵帖〉은 후기의 능숙해진 화풍을 보여주며 이재관은 이 시기부터 다양한 필묵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松下處士圖>, 〈芭蕉下仙人圖〉를 비롯한 후기 인물화는 이재관의 대표적인 화풍을 보여주어 중요하다. 〈美人寫書畵〉는 淸代 費丹旭(1802-1850)과 改琦(1773-1828)의 仕女畵風을 수용한 것이며, 〈女俠圖>는 任熊(1823-1857)을 비롯한 淸代 海派의 인물화 경향과 유사하여 주목된다. 그는 직업화가로 활동하였던 만큼 후기에 이르러서도 당시 유입되었을 화보를 비롯한 새로운 淸代 화풍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19세기 중, 후반경에는 奎章閣 差傭待令畵員의 祿取才로 중국의 고사를 주제로 한 내용들이 빈번하게 출제되었으며 당시 고사인물화는 이재관을 비롯하여 이한철(1812-1893 이후), 백은배 (1820-1894 이후), 유숙 등 화원화기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또한 이들에 의해 형성된 고사인물화풍은 조선 말기 張承業(1843-1897)의 고사인물화에도 계승, 변모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장승업 이후부터 더욱 두드러지는 간단한 산수를 배경으로 인물을 부각시켜 그려낸 인물화 양식은 조선 말기 화단에 淸末의 揚州八怪, 仕女畵, 海派를 비롯한 다양한 화풍들이 새롭게 유입되면서, 더욱 다각적으로 변모해 근대화단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후기에는 경화세족을 비롯한 회화 수요층과 고동서화 수장가들이 늘어나면서 화원화가나 직업화가들의 양적 팽창과 함께 그들의 역량을 제고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이후 많은 직업 화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는데, 이재관의 화가로서의 생애와 작품 경향은 조선 말기로 변모해가는 당시 화단과 회화 활동의 배경이 되었던 사회ㆍ경제적인 모습을 다각적으로 보여주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생애와 교유관계
Ⅲ. 작품세계
Ⅳ. 이재관 회화의 회화사적 의의
Ⅴ.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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