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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학회 사학연구 史學硏究 第91號
발행연도
2008.9
수록면
261 - 311 (5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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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세기 후반 동계의 실제적인 운영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동계가 과거 사족지배체제 하에서 향촌지배기구로 기능했던 것과 달리 자연촌 단위의 촌락자치기구로 기능하였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고에서는 전남 장흥군 용산면 어서리 동계의 사례연구 방법을 취했으며, 동계 운영의 실상을 시계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동계수지부를 적극 활용했다.
어서리 동계는 1838년에 부세의 공동납에 대응하기 위해 중수되었으며, 하나의 자연촌을 단위로 조직되었다. 그렇다고 어서리 동계는 단순한 응세조직이 아니라, 마을의 자율적인 규제와 운영에 관한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동유재산과 동유기물을 관장하면서 주민들의 복리를 뒷받침하는 등 촌락의 자치적 운영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이었다.
19세기 후반 어서리 동계의 재정지출을 분석한 결과, 전반적으로 부세 대응의 기능이 중심이 되었지만, 1880년대 이후에는 공동체 행사나 동유기물 마련과 관련된 지출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어서리 동계는 외부적 압력인 부세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 결속을 강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또한 어서리는 반촌의 특성상 동계 결성 당시부터 유교적 질서를 강조하였지만, 19세기 후반의 실제적인 동계 운영과정에서는 신분제적 질서가 점차 약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 더불어 계전의 식리 활동에도 동민들 다수가 참여하여 동계전대부의 권한과 관리의 책임을 공유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동계 운영이 신분과 혈연의 장벽에 제한되지 않는 개방성을 가지며, 다수 동민들의 공동책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19세기 후반에 어서리 동계에서 보인 ① 자연촌 범위, ② 부세대응 기능, ③ 신분지배 약화 등의 특징은18세기 이전에 사족층의 향촌지배기구로서 기능했던 동계와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양상이다. 동계의 범위가 농민의 기초적 생활단위인 마을 범위로 소규모화된 것은 동계가 동민의 일상생활에 보다 긴밀하게 결합할 토대를 제공한다. 또한 어서리 동계는 부세를 비롯하여 마을 단위에 부과되는 각종 압력과 과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적 결속을 강화하였다. 어서리가 반촌 동성촌락임에도 동계 운영에서 성씨와 신분의 차이를 넘어 다수 동민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에서도 동계의 개방성이 나타나며, 더구나 동계가 신분지배적 성격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사족중심적 동계의 핵심적인 특성의 하나인 하민에 대한 통제기능이 소멸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결국 19세기 후반에 동계는 사족층의 향촌지배기구 또는 신분지배조직의 성격에서 벗어나 촌락 단위의 생활공동체적 성격의 동계로 그 성격이 전화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19세기 후반에 동계가 형해화되면서 역사적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촌락 단위의 자치조직’으로 재정립되었음을 의미한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어서리의 연혁
Ⅱ. 어서리 동계의 설립과 구조
Ⅲ. 賦稅의 共同納과 공동체적 결속의 강화
Ⅳ. 동계 운영의 개방성과 신분질서의 약화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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