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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학학회 동학연구 동학연구 제16집
발행연도
2004.3
수록면
1 - 3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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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만주지역 포교는 1900년대 초부터 이루어졌지만 이 시기의 포교는 개인적 또는 만주를 접경으로 하고 있는 교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북경에 전교실이 설치를 계기로 해외포교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였으며, 교단적으로도 적극 후원하였다. 이러한 포교에 의해 1920년대 말 15개의 군단위 종리원과 10여 개의 연단위 종리원이 설립 유지되었다. 1930년대 초에는 3개의 종리원이 감소되었으나 이후 흥경현종리원, 영안현종리원, 도문종리원, 장백현종리원, 대동구종리원, 공주령종리원, 금불사종리원 등이 새로 설립되거나 재건되었다. 이중 대동구종리원은 만주지 역에 만주인을 중심으로 교세를 형성하였던 재리교를 개종시켜 천도교로 흡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천도교 종리원의 운영은 만주국이라는 특성과 마적, 토비 등의 활동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1930년대 천도교의 주요활동은 국내와 마찬가지로 신문화운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3·1운동 이후 국내에서 전개한 신문화운동은 청년당의 중앙집권적 조직에 의해 만주지역 청년단체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되었다. 1920년대 말 설립된 통일임강당부(林江統一薰部)는 각 지역청년단체의 신문화운동을 적극 후원하는가 하면 이들 단체의 일원화를 위해 당원훈련, 접(接)을 통한 자학, 부문운동 진작 등을 전개하였다. 이밖에도 각 청년단체에서는 제등행렬, 씨름대회, 동화대회, 교양강좌 등 천도교의 사회화를 위한 통속운동을 갖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청년단체는 국내에 설립된 조선농민사의 지부를 설립하여 재만한인 농민의 이익옹호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청년단체의 신문화운동과 농민사의 이익획득운동과 교육활동은 만주지역 한인 사회의 의식을 향상시키는데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목차

한글 논문개요
영문 논문개요
Ⅰ. 머리말
Ⅱ. 천도교의 조직과 현황
Ⅲ. 신문화운동의 전개
Ⅳ. 맺음말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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