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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사학회 경주사학 慶州史學 第21輯
발행연도
2002.12
수록면
1 - 2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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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봉4년개토』 글씨기와의 정확한 의미 파악은 「의봉4년」인 679년에서 시작된다. 676년 기벌포 전투를 끝으로 당과의 전쟁은 끝났지만, 패수 이남의 영토를 신라가 당으로부터 정식 인정받는 것은 성덕왕 34년(735)의 일이다. 그러나 신라는 당의 토번ㆍ돌궐과의 관계와 당의 내부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679년 이후에는 대당 전쟁이 없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679년 탐라국을 경략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궁궐을 중수하고 동궁을 창건하고 문의 액호를 정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신라 유일의 연대표기 기와인『의봉4년개토』 글씨기와를 제작하여 서라벌 전역에 대대적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신라인들이 인식한「일통삼한」의 기념은 676년이 아니라 「의봉4년」인 679년인 것이다. 또 「개토」는 「삼국통일」이라는 민족 통일의 의미가 아니라, 「일통삼한」 즉 「삼한을 영토적으로 통합한 것」이라고 해석하여야 함을 밝혔다.

목차

논문 개요
Ⅰ. 머리말
Ⅱ. 신라의 대당전쟁과 영토 확보
Ⅲ. 신라의 내외변화와 『의봉4년개토』글씨기와
Ⅳ. 신라의 삼국통일과 『의봉4년개토』글씨기와의 해석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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