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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53
발행연도
2009.3
수록면
125 - 15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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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은 4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존속하였다. 이처럼 오랜 기간을 하나의 단일한 시대로서 이해하기는 곤란하며 또한 낙랑군의 모습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뚜렷하였다. 이에 따라 본고에서는 낙랑군의 역사에 대한 시대구분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여섯 시기로 구분하였다.
제1기는 한무제가 조선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낙랑군을 비롯하여 군현을 설치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중국적 지배방식을 현지 주민에게 강요하던 시기로서 지배형태는 무단적이었으며, 이에 따른 원주민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그 시기는 무제기에 해당한다.
제2기는 한무제의 사망이후 원주민에 대한 지배가 다소 완화되었던 시기이다. 진번군과 임둔군이 폐지되고 현도군이 이사한 것도 이 때문으로서, 이 시기는 공권력에 대신하여 민간(주민)의 역할이 확대되었다. 특히 낙랑인 王調가 봉기한 후한 초는 민간 활동의 전성기라고 할 만하다.
제3기는 후한이 왕조정권을 진압한 이후 낙랑에 군현의 공권력을 복원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 이후 민간의 교류는 2期의 산동에 대신하여 요동에 의존하였으며, 특히 祭?이 요동태수로 재직하던 시기 낙랑에 대한 요동의 영향은 컸다. 이 시기는 2세기 초 安帝期까지 지속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제4기는 후한 중기부터 말기에 이르는 시기로서 이 기간 중 낙랑군은 크게 쇠퇴하였다. 그 원인은 낙랑 밖의 원주민사회가 성장한 때문으로서 이로 인한 낙랑주민의 동요와 이탈이 있었다. 낙랑을 지원해야 할 漢 조정도 무기력한 상태로서 낙랑의 쇠퇴는 후한말까지 계속되었다.
제5기는 후한 말기에서 曹魏의 기간으로서, 이 시기 낙랑군은 요동에 자리한 세력의 지원을 받아 부흥의 기회를 맞았다. 요동에 공손씨정권이 출현하면서 낙랑은 그 지배 아래 있었는데, 2대 군주인 公孫康은 낙랑군 남부에 대방군을 신설하여 낙랑주민의 이탈 문제를 해결하였다. 공손씨정권이 붕괴한 이후엔 요동에 주둔한 幽州刺史가 대신하여 낙랑과 대방을 지원하였다.
제6기는 낙랑 최후의 시기로서 魏ㆍ晉의 교체기로부터 西晉 말기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때에 낙랑과 대방에서 군현체제를 확인하기 어렵다. 잠시 東夷校尉의 후원을 받는 시기가 있었으나 그 영향은 과거 요동군이나 幽州刺史府의 지원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낙랑 최후의 과정은 官府의 모습이 아닌 주거집단으로서의 모습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郡縣 설치 시기(제1기 : 漢武帝期)
Ⅲ. 민간 역할의 확대 시기(제2기 : 昭帝期~光武帝初期)
Ⅳ. 군현의 재정립 시기(제3기 : 光武帝期~安帝期)
Ⅴ. 낙랑주민의 이탈 시기(제4기 : 安帝期이후~靈帝期)
Ⅵ. 요동세력 지원 시기(제5기 : 後漢 建安~曹魏 正始年間)
Ⅶ. 주거집단으로 잔존 시기(제6기 : 3세기후반~4세기초)
Ⅷ.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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