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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동양정치사상사 제8권 제1호
발행연도
2009.3
수록면
45 - 67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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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출생하여 1955년에 세상을 떠난 仁村 金性洙는 한국의 독립된 민주국가를 건설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인촌은 이승만의 건국(단정) 노선을 지지해 남한에서라도 공산화를 저지할 수 있었다. 우남을 건국의 아버지로 간주하는데 인촌의 역할도 그에 버금가게 중요하다. 건국의 양대 산맥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민당의 조직력과 자금력이 없었다면 이승만 혼자의 건국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독정부 수립에 적극적이었던 인촌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 반공적 지도자로 인식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같은 우익지도자 중 우남을 반공주의자로 간주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인촌을 반공주의자로 보는 것에는 다소 어색한 점이 있다. 이데올로기 면에서 이승만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주견이 뚜렷했지만 고집이나 아집-편견은 없었으며 타협적-통합적 지도자였다. 여기에다가 민주적인 포용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부기해야 한다. 참된 민주주의는 독단과 아집의 정치가 아니라 타협의 정치이다. 인촌은 인내력 있는 현실주의자이며 통합을 도모했던 지도자였다. 그의 정치 신조는 널리 포용하여 함께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통합(화합)과 포용(관용)의 정치철학을 가진 인물로 인촌을 평가할 수 있다.

목차

논문요약
Ⅰ. 머리말: 정치가로서의 인촌
Ⅱ. 치열한 찬-반탁 논쟁과 고하의 암살: 회오리 속에서 중책을 떠맡은 인촌, 1945년 말-1946년 초
Ⅲ. 민족진영 통합을 위한 노력: 민족진영 내 탁치문제를 둘러싼 노선과 정당대립의 통합을 위한 노력
Ⅳ. 건국 과정과 인촌
Ⅴ. 맺음말
〈참고문헌〉
영문요약

참고문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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