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판도를 뒤바꾼 사건으로, 문학사에 있어서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청일전쟁이후 러일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일본 국내는 ‘애국과 군국’의 분위기속에서 〈군국미담〉이 성행했으며, 패전의 충격을 경험한 중국 내부에서는 이를 자각하는 분위기속에서 신중국을 건설하기 위한 이른바 ‘소설혁명론’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았던 조선 내부에서는, 외세의 압력 하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략으로서 애국을 호소하는 문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메이지기 일본에서는 창작된 정치소설과 함께, 일종의 비주류의 문학으로서 번역된 정치서사가 성행했다. 이 번역된 정치서사는 일본(근대)문학사에서 기록되지 않았는데, 그 내용은 조선의 군담소설과 비슷한 것으로, ‘전장에서 무사로서 싸우거나’ ‘충신으로서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봉건적인 모습을 담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문학사에서 기획된 소설의 모형으로는 당대 자유민권운동과 운명을 같이한 정치소설을 들 수 있다. 이 정치소설은 19세기 말 중국에서 양계초에 의해 번역된 바 있으며, 양계초는 국권과 민권의 조화에 초점을 맞춘 일본의 정치소설과 다른 목적으로, 즉 중국 내부에 필요한 사안을 충족시킬 수 있는 소설로서 이를 전파시켰다. 양계초는 중앙집권적 정부를 수립하고자 한 온건한 혁명파로서, 과격한 혁명의 세력을 경계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그가 번역하거나 초안한 작품에 반영되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양계초는 중국을 개혁시킬 신국민을 형성하는 중요 매체로서 소설의 기능을 제기한 바 있으며, 이러한 ‘소설효용론’을 바탕에 두고 ‘신국민’이나 ‘순수한 애국심’을 고양시킬 수 있는 소설을 간행했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이러한 일본과 중국의 영향으로,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일본의 정치소설을 번역하거나 중국의 정치서사를 수용했다. 전자의 경우, 대표적으로 구연학의 〈설중매〉와 현공렴의 〈경국미담〉을 들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로 신채호의 〈이태리건국삼걸전〉과 박은식의 〈서사건국지〉, 당대 언론매체에 실린 〈라란부인전〉과 〈헝가리애국자갈소사전〉 등을 들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일차적으로 이들 작품 가운데, 장지연의 〈애국부인전〉을 살펴보고자 했다. 〈애국부인전〉은 ‘잔다르크의 이야기’로, 아직 중국의 판본은 밝혀진 바가 없으나, 일본의 경우에 많은 판본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일본의 판본에서는 대체로 잔다르크가 입신양명한 여걸이나 호전적인 호걸 그리고 왕에게 충성을 다한 충신으로서 부각되어 있다. 즉 〈애국부인전〉의 핵심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근대국민의 이미지는 약화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의 흐름을 타고 대대적인 광고 아래에, 애국(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는 남녀독자의 호응을 받았다. 즉 국민의 의무를 다한 애국부인의 대표적인 행적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되었으며, 당대가 요구하는 시대적인 산물로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