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인문콘텐츠학회 인문콘텐츠 인문콘텐츠 제16호
발행연도
2009.11
수록면
225 - 249 (2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김염(1910. 4. 8∼1983. 12. 27)은 ‘조선인’으로서 1930년대 상하이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배우로 활약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연구에 있어, 이 연구는 역사적 김염이 아닌 현재적 김염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조선인으로서 그가 어떻게 당대의 상하이 스크린에서 가장 빛나는 스타성을 획득하는지를 검토함과 동시에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정위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김염이 한국 사회에서 소환되는 방식을 검토함으로써 그가 어떻게 우리에게 다시 귀환하는지, 한국의 독자와 관객이 어떻게 그를 수용하는지에 관한 면모를 밝히고자 한다. 이 연구는 1930년대 상하이라는 이국의 공간의 스크린에서 스타가 된 배우로서 김염이 세계를 구별짓는 경계를 뛰어넘은 사건의 서술을 통해서 그 자신의 실존적인 면모를 해석하고 정위하며, 오늘날 그를 다시 소환하는 실천 속에 감추어진 ‘오독’ 현상을 비판하고자한다.
상하이의 스타로서 김염에게는, 예컨대 할리우드와 유럽에서 ‘노란 얼굴 연기’로 유명세를 떨쳤던 배우, 안나 메이 웡(?柳霜)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안나 메이 웡은 끝내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동양의 여배우로서 불가불 차별적으로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전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염은 근본적으로 출생이 문제가 되지 않은 경우였다. 그에게는 오리엔탈리즘적 차별의 기제가 작동할 가능성이 거의 전무했다. 그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인종 정체성이나 언어 정체성이 아니라 국족 정체성이었다. 그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고자 했던 근거를 찾기는 어려우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그가 스스로의 국족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설정하는 전략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김염은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였다. 사실, 1930년대 그가 상하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에도 우리는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최근 김염의 귀환은 민족서사와 행보를 같이 한다.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그의 가족 구성이 어떠했으며, 그가 어느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며, 그의 부모가 어떻게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는가를 문제 삼는다. 따라서 김염의 소환은 그의 가계를 재구성하는 의례를 통해 완성된다. 그것은 ‘해방’ 이전 식민의 땅, 특히 그 중에서도 그다지 중시되지 못했던 영화나 도시문화 같은 대중문화를 복원할 때, 정치성과 이데올로기가 스스로에게 가져오는 자기 검열의 결과로 보인다. ‘조선’의 식민 기억 서사에서 민족독립의 서사는 여전히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김염은 민족의 기표를 동원하지 않고는 재구성되지 못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김염과 월경(越境)하는 스타(들)
Ⅱ. 상하이 은막 스타 김염과 국족 정체성의 재구성
Ⅲ. 귀환하는 김염 : 민족 서사와 한류 서사로의 소환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09-001-019140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