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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연구소 미술사논단 美術史論壇 第26號
발행연도
2008.6
수록면
247 - 27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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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미지를 꼽자면, 曹植이 지은 詩篇 『洛神賦』에 王獻之의 書法과 顧愷之의 회화가 결합한 예술형식이 가장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상은 후세에 전승되는 과정에서 각각 세 개의 형식이 서로 유기적인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어 창작자와 감상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타 현상을 일깨워 주고 있다. 따라서 창작품이란 시대에 따른 새로운 해석을 의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 일어날 재해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본문에서는 먼저 12세기 당시 〈낙신부〉의 전통을 재현시키고자 기획한 노력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송 휘종은 왕헌지가 쓴〈洛神十三行〉을 石刻으로 전하고 있고, 아울러 친히 臨寫하여 만천하에 알리고 있다. 현존하는 세 개 본 중 가장 오래된 〈洛神賦圖卷〉은 고개지의 손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이 또한 송대 궁정에서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낙신십삼행〉에서 표현된 文雅한 세계와 달리 그림은 일종의 오래된 도상과 함께 당시의 奇想적인 분위기가 혼합되어 재현된 것이다. 이는 12세기의 그림을 기초로 한 것이라고 한다면, 14세기 衛九鼎과 倪瓚이 함께 만들어낸 낙신은 또 다른 종류의 絶俗적인 여신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이렇게 제조된 형상은 16세기 蘇州에서 고도로 상업화된 사회 속에서 또 다시 仇英의 필 아래 嬌媚한 美人으로 변하게 된다. 18세기에 들어와 乾隆帝가 이 그림을 수장한 후 改裝은 계속되었고, 아울러 궁정화가 丁觀鵬은 황제의 명령에 따라 改修와 摹本 작업을 이루어 내었다. 〈낙선부도〉를 역사 발전의 원점으로 돌려놓는 황제의 이러한 행위는 ‘主題傳統’이라는 범례로 볼 수 있는데, 이는 ‘大家傳統’과 비교해서 中國畵史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목차

Ⅰ. 왜〈낙신부도〉인가?
Ⅱ. 12세기〈낙신부〉이미지
Ⅲ. 14세기의 해석
Ⅳ. 仇英의 美人에서 乾隆帝의 〈洛神賦圖〉까지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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