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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철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36호
발행연도
2010.3
수록면
107 - 13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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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조선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표현은 ‘島夷’이다. 일본을 섬나라 오랑캐로 인식한 것이다. 1748년 통신사가 일본에 갈 때, 왕은 도로, 산천, 무예, 인심, 습속 등을 잘 관찰하라고 당부하였다.
통신사는 ‘인식의 공간 일본’이 아니라, ‘實地의 일본’을 보려고 하였다. 그들이 본 18세기의 일본은 과연 ‘島夷’의 나라였을까? 이 논문은 이 물음에 대한 시도로서, 통신사가 본 일본의 산업과 기술의 실상을 살펴보았다. 검토 대상은 1763~1764년 통신사를 택하였다. 특히 ‘물[水]’과 관련된 일본의 산업과 기술 부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통신사는 일본의 水車, 선박, 蛇籠 등의 기술을 도입하려고 노력하였다. 조선 선박과 일본 선박의 장점을 살린 배의 모형도 만들었다. 그러나 일본의 선진 문물이 수용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통신사가 귀국하여 왕에게 보고할 때, 왕은 일본의 실정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하였다. 그러나 왕의 질문과 통신사의 보고 어디에도 산업과 기술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일본 오사카[大坂]는 당시 인구 40만 명 정도의 대도시였다. 오사카는 상공업의 발달로 일본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 ‘商都’인 오사카는 당시 ‘천하의 台所[부엌]’라고 불리었다. 이러한 오사카의 성격이야말로 교토(京都)와는 구분되는 오사카의 지역성이다. 그렇지만 통신사는 오사카를 일본경제의 중심지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사치와 향락에 빠진 병든 도시로 인식하였다.
통신사는 일본을 바다 속에 있는 文明의 나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일본을 야만인의 나라가 아닌 문명의 나라로 인식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을 바라보는 지식인 통신사의 눈은 여전히 착시가 심하였다. 통신사는 일본의 실정을 정확하게 보겠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島夷’라는 ‘인식 空間의 일본’을 보고, 인식하고 온 것은 아닐까.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水利土木 기술
3. 造船 기술
4. 捕鯨業
5. 산업기술의 본산, 商都 大坂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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