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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성재 (해군사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1
발행연도
2011.3
수록면
337 - 37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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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천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에서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벌인 이 전투는 거의 일방적이다 싶을 정도로 고려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고려가 완승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후백제를 압도하던 고려군의 규모에서 비롯한다. 무려 87,500명의 병력이 동원되었고, 그 병력은 3군체제하 마군을 주력으로 보군이 질서정연하게 편성되었다. 종래 이 군사의 수치에 대해 부정하는 견해가 있었지만, 전략 전술적 차원에서 살펴 보건데 사실로 보여진다.
왕건이 대규모의 정벌군을 편성한 것은 농사철에 농민과 군사의 동원이 불가피하였던 현실에서 최대한 많은 수의 병력을 동원하여 전투를 신속히 종결짓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결전과 속전속결은 그러한 목적에서 수립된 전략이었고, 이는 후삼국 전쟁사상 전례가 없던 최대 규모의 병력이 동원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속전속결로 승리를 거두어야 했으므로 기동력과 전투력이 높은 마군 중심의 전술적 편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전과 속전속결전략에 입각하여 왕건은 일선군으로의 우회기동전술을 구사하였다. 가급적 단기간내 결정적인 전투로 전쟁을 종식시켜야 했으므로 천안부에 선발대를 파견하여 후백제군의 분산을 유도하는 한편 일선군에는 정벌군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속전속결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천안부와 일선군 현지를 연결하는 병참지원체계를 구축하였다.
왕건이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시간 내 일선군에 도착하여 결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병력의 분산 및 집중 전술과 현지에서의 병참 지원능력의 확보가 커다란 조력이 되었던 것이다. 결전과 속전속결 전략을 적용하여 왕건은 후백제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후삼국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는 결과를 달성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대후백제 정벌군 편성과 규모
Ⅲ. 일리천전투와 왕건의 전략
Ⅳ. 일선군 우회기동의 전술적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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