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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王連茂 (천주해외교통사박물관)
저널정보
국립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도서문화 도서문화 제36집
발행연도
2010.12
수록면
111 - 13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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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高麗史』 및 중국 문헌 관련 자료에 대한 통계와 분석, 연구를 통해 宋代 각 시기의 泉州港과 고려무역의 흥성과 쇠퇴 변화 및 그 원인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두 나라간 泉州, 海商의 경제ㆍ문화 교류와 외교관계의 역할을 밝히는 것에 치중하고자 한다.
글은 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들을 논술한다. (1) 북송 元祐4년(1089) 에 발생한 ‘徐?公案’에 대해 抗州 知府 蘇軾은 이에 대해 나쁘게 평을 하여 여러 차례 조정에 상주하였고, 慶歷과 嘉祐의 정책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고려 승려를 태우고 亡僧 淨源을 추모하러 항주로 온 ‘주범’인 천주 해상 徐?을 엄하게 다스릴 것을 주장 하였다. 그 목적은 복건과 절강 해상에서의 금지 행위를 막고, 고려와 遼나라에 대한 해상무역을 저지하는 것에 있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천주항에서의 해상무역에 미친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淨源은 천주인이었기 때문에 천주 해상과의 교류와 밀접하였다. 자료가 보여주듯이 淨源과 고려왕자 僧統義天의 여러 해 동안의 교류에서 천주 해상은 그들에게 편지, 경서를 전해주었고, 양국의 교 철학 교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高麗史』와 관련된 자료의 통계 결과로부터 알 수 있다. 송과 고려간 무역의 첫 번째 절정기는 11-12세기 초의 북송 眞宗朝부터 徽宗朝까지였다. 천주 해상이 고려로 무역하러 간 것 역시 이 시기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를 천주항과 고려 무역의 密月期라고 한다.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로 간 천주 상인의 수가 가장 많았고, 게다가 상당히 활발하였다. 그 무역의 발전 추세는 다른 항구의 상인들과는 실제로 비교할 수가 없었다. 송과 고려무역의 첫 번째 절정기는 거의 泉州해상들로 인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에 泉州港과 고려의 무역이 매우 발전하였던 이유는 천주에 아직 市船司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南海로 가는 통행료가 적었던 것과 관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南宋 紹興년간(1131-1162년)에 송과 고려 무역의 짧은 두 번째 절정기가 왔다. 그러나 남해무역에서 천주항이 날로 번창해짐에 따라서 천주항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국제무역권이 형성된 이후에 고려(와의 무역은 북송 시기처럼 그렇게 두드러지거나 중요해지지 않게 되었다.
(3) 고증을 해보니 泉州港에는 北宋 때부터 고려로 직항하는 항로가 있어 明州를 경유할 필요가 없었다. 상선은 泉州港에서 출발하여 바로 주산군도의 沈家門에 이른 다음 東海를 거쳐 조선반도 남단에 도착한다. 다시 서해안을 따라서 고려왕성에 이르렀다. 13세기에 고려로 향하는 천주 상선의 항로에 약간의 변화가 생겨 반드시 먼저 명주를 거친 다음에 계속하여 운항하여야 했다. 그 원인을 따져보니 ‘風水之說’과의 관련이 매우 컸다. 비록 이러하더라도 천주 상선은 명주에 먼저 이른 후에 계속하여 옛 항로를 따라 고려로 갔다.

목차

[국문초록]
一. “徐?公案”的??去?
二、北宋泉州?高?的?易
三、泉州航路及其?化
四、??
參考文獻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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