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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곽승훈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40호
발행연도
2011.7
수록면
167 - 199 (33page)
DOI
10.15299/jk.2011.07.40.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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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護法論』은 고려 말 禑王 5년(1379) 幻庵禪師의 주도로 충주 靑龍寺에서 간행 배포되었다.
宋의 丞相 장상영이 저술한 『護法論』은 韓愈와 歐陽脩가 제기한 斥佛論에 대해 반박한 글이다. 장상영은 佛事活動의 功德無用論에 대해 유교 경전의 내용과 역사 사례를 들어 논리적으로 반박하였다. 또한 유교와 불교가 학문을 연마하거나 수행한 뒤 얻는 결과로서의 목표가 중생을 교화하여 그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처럼 같으므로 儒佛不異를 주장하였다. 즉 그의 의도는 性理學者들에게 斥佛論의 拂拭을 넘어 유불불이의 취지에 공감토록 하는 것이었다.
恭愍王代 성리학자들은 불교계의 사회경제적 폐단을 비판하였지만, 불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白文寶와 같은 儒佛不同의 입장과 李達衷과 같은 儒佛不異의 입장 둘로 나뉘어져 있었다. 따라서 儒佛不異의 취지가 잘 설명된 『護法論』을 환암이 간행 보급한 목적은 바로 儒佛 간 의 調和를 이루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때문에 『護法論』은 많이 배포되어 읽혀졌는데, 이는 恭讓王 3년에 올려진 여러 편의 척불상소의 내용 에서 확인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조선 왕조에서는 성리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아 儒佛不同의 입장을 확고히 하였다. 그렇지만 『護法論』은 조선 왕조에서도 계속 인쇄 배포되었으며, 성리학자들이 이를 읽고 공감도 하는 한편 반대도 하였다. 이는 불교를 배척하는 성리학이 있는 곳에 항상 『護法論』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런 점에서 보아 고려 말 『護法論』의 간행과 배포는 역사적으로 사상사적으로 그 의의가 작지 않음을 알겠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護法論』내용과 저술의도
3. 고려 말『護法論』의 전래와 환암의 간행
4. 환암의 『護法論』 간행 배경과 목적
5. 『護法論』의 배포와 고려 말 척불논쟁
6.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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