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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朴南守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4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439 - 481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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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색복조 기사는 『수서』나 『구당서』?『신당서』의 신라 복식 기사나 경주 용강동 고분 출토 토용의 복식과도 차이가 있다. 이에 진덕왕 2년(648) 김춘추의 당나라 복식의 수용과 문무왕 4년(664) 부인 복식의 당제로의 개혁으로 신라의 의복이 당나라의 그것과 동일하게 되었다는 기왕의 견해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본고에서는 신라 복식 관련 기사와 『삼국사기』 색복조 흥덕왕 9년(834)의 복식 규정을 검토하여, 흥덕왕 복식 규정의 주요 특징과 의미를 살피고, 신라 복식의 소재인 직물의 종류와 각 유형별 직물의 생산 체계를 추출하고자 하였다.
신라는 7세기 중반 김춘추가 수용했다는 唐儀(당나라 儀章)는 관복에 한정되었고, 문무왕 때 부인복제의 수용으로 머리 꾸밈 등에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신라 관료들의 복식은 대체로 하대까지 지속되었고, 그것이 김부식이 일컬은 ‘중국의 옛날 복식제’라고 일컬은 기사로 연결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흥덕왕 교서의 색복제로부터 9세기 전반 재료나 실을 켜는 방법에 따라 織品이 정해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표백의 정도, 염색을 織造 전에 하느냐 후에 하느냐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왕족의 의복소재로부터 신라 궁중 수공업장에서의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궁중수공업장의 공법은 귀족들의 수공업장에 전수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사회 전반으로 『삼국사기』 색복조에 보이는 호화로운 신라 의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신라 복식 관계 기사의 검토
Ⅲ. 흥덕왕 색복제에 보이는 신라의 衣生活
Ⅳ. 흥덕왕 색복제에 보이는 織物과 그 생산 체계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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