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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喜寬 (西江大)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4권 제2호
발행연도
2011.11
수록면
7 - 51 (45page)
DOI
10.17068/lhc.2011.11.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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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韓國陶瓷史 상에서 初期靑瓷의 출현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문제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陶器專用時代를 마감하고 瓷器時代로의 진입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 중요성에 걸맞게 초기청자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은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렇지만 초기청자와 관련된 수많은 문제들이 아직도 논쟁 중에 있다. 초기청자의 출현시기에 대해서조차 1세기 이상의 시간적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 초기청자 연구의 현재적 실상인 것이다. 이러한 논쟁의 시발점에 그 출현시기 문제가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초기청자의 출현시기를 중심으로 하여 이제까지의 초기청자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초기청자의 출현시기에 대해서는 9세기전반설ㆍ9세기후반설ㆍ9세기후반~10세기초반설ㆍ10세기전반설ㆍ10세기후반설 등이 제출되어 있으며, 아직도 치열한 논쟁이 진행중이다. 각 견해가 제시한 근거는 다양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초기청자의 표식적 기종인 해무리굽완과 이른바 ‘선해무리굽완’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자는 초기청자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출현한 器種으로서, 근래의 초기청자 출현시기에 대한 논쟁은 선해무리굽완에 대한 논쟁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즉 선해무리굽완을 초기청자의 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越窯의 어느 시기의 어느 기종과 같은 계통으로 보는가에 따라 초기청자의 출현시기에 대한 견해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9세기전반설은 이러한 기종이 월요에서 9세기 전반에 유행하였다고 보며, 10세기 후반설은 월요에서 그것이 10세기 후반에 유행하였다고 본다. 하지만 근래의 월요에 대한 발굴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造形과 燔造法의 측면에서 선해무리굽완과 가장 흡사한 것은 五代時期에 유행한 玉環底碗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초기청자의 출현시기 문제는 이 대전제 위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 중서부지방 초기청자와 남서부지방 초기청자의 선후관계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자가 시간적으로 선행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고, 초기청자를 생산한 요장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그것들이 瓷器所, 官窯, 貢納窯, 私窯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견해들이 논쟁 중이다. 그리고 초기청자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출현한 초기백자에 대해서는 그것이 중국의 北方窯場의 영향이었다는 유력한 견해가 제출되어 있으며, 초기청자의 소멸시기와 관련해서는 그것이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12세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목차

[초록]
1. 한국 초기청자 연구의 궤적
2. 초기청자의 출현시기 문제
3. 중서부지방 초기청자와 남서부지방 초기청자의 선후관계 문제
4. 초기청자와 초기백자의 관계 문제
5. 초기청자 요장의 성격 문제
6. 초기청자의 소멸시기 문제
7. 餘言-초기청자 연구의 진전을 위한 제언-
[참고문헌]

참고문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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